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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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문화재] 임금 초상 걸었던 일월오봉도삽병

2007년 국립고궁박물관의 개관을 앞두고 전시품을 고르기 위해 지하수장고를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수장고에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조선시대 궁중 유물들이 가득 차 있어서, 갈 때마다 설렜다. 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월오봉도삽병’(사진)이다. 가장자리를 나무틀로 마감한 일월오봉도였는데, 이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유물 대장에서는 액자라고 기재돼 있었는데, 높이가 190㎝에 달하고 상단에는 작은 도르래가 붙어 있었다.

어떤 용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의궤(儀軌)를 찾아보았다. 의궤에는 궁궐의 각종 행사 때 제작했던 품목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왕의 초상인 어진들을 모셨던 덕수궁 선원전에 화재가 있은 후, 1901년 일곱 임금의 어진을 다시 그린 일을 기록한 ‘영정모사도감의궤’와 1902년 고종의 어극(御極) 40주년을 기념해서 남긴 ‘어진도사도감의궤’에 일월오봉도삽병이 그려 있었다. 삽병이란 그림이나 서예, 조각품을 나무틀에 끼워서 세운 것을 말하는데,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실내 장식용 가구에 속한다. 따라서 일월오봉도삽병은 상단의 도르래에 임금의 초상을 걸어놓고 감상할 수 있도록 배경 그림과 틀을 겸하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액자 형태의 일월오봉도가 남아있다면 이를 끼우기 위한 삽기(揷機)가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다. 수장고를 샅샅이 뒤지는 중에 가구류를 모아놓은 방 한편에 나무틀 몇 기를 찾을 수 있었다. 의궤 속 그림과 생김새는 비슷한데 과연 크기가 맞을까. 두 개를 합체하면 높이가 3m에 달하기 때문에 여러 명의 직원이 함께 맞잡고 조심스럽게 끼우기 시작했다. 그림은 나무틀 홈에 꼭 들어맞았고 바로 세웠을 때 그 위용은 매우 당당했다. 함께 작업을 했던 동료들 얼굴에 띠었던 기쁨의 미소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마도 완성된 어진을 일월오봉도삽병에 걸어놓고 감상했을 당시 고종 황제를 비롯한 궁중의 사람들 모습 또한 그랬으리라 생각했다.

박윤희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