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기호(45)가 ‘가족소설’이라고 명명한 소설집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마음산책) 서두에 붙인 말이다. 월간지에 3년 넘게 연재한, 아이들과 아내와 살아가는 짧은 이야기 45편을 모은 책이다. 해학과 익살과 엄살에 감동을 동반하는 글 솜씨가 탁월하다. 읽다 보면 헛웃음을 웃다가 가슴이 따뜻해지고 눈물까지 맺히는 꼭지들이 많다.
짧은 이야기 속에 해학과 감동을 능청스럽게 담아낸 소설가 이기호. 그는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이름 자체가 꼭 소설의 다른 말인 것만 같다”고 썼다. 마음산책 제공 |
그렇게 들어온 코코몽이 세상에 나올 때 아내의 눈물겨운 배려 때문에 남편은 그 딸마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을 지키지 못했다. 어쨌든 이렇게 생겨난 딸까지 합쳐 어린 삼남매와 이들을 치다꺼리하는 아내와 더불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이 소설집을 채워나간다. 학교 선후배 사이이자 조교와 학생 관계로 처음 만난 여덟 살 연하의 아내는 결혼하고 나서도 깍듯이 존댓말을 쓰다가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아이 이름과 남편 이름을 번갈아 불러댄다. 남편은 “억울한 것도 없었고 부당하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는데 “그만큼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자의 모습을 옆에서 찬찬히 바라보고 있자니, 아아, 이건 나이고 뭐고 세상 모든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한 뼘 정도는 더 위대하구나,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시간들이었단 소리”라고 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엄마와 자라는 아이들을 데리고 절에 갔다가 온 날 아이가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다 말고 내내 울었다는 사연. “아빠랑 헤어지기 싫다고, 죽으면 아빠는 부처님한테 가고 자기는 예수님한테 가야 한다고…….” 아내가 해주었다는 대답. “언젠가 우리 모두 헤어질 수밖에 없는 거라고…… 하지만 별들처럼 다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남편이 조용히 아내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말, 예쁘다. “별자리가 다 그런 거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거…….”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는 건 기쁜 일은 더 기뻐지고 슬픈 일은 더 슬퍼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리고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들과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포스가 함께하길.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그것뿐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