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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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선 매니페스토 2.0-미래와의 약속] “출산장려 정책만으론 한계… 양육환경 개선 최우선 돼야”

⑧·〈끝〉 저출산 시대, 아이 잘 키울 수 있는 사회로 - 이봉주 서울대 교수
저출산 문제가 심상치 않다. 지난 10여년 동안 1.2명대에 머물며 높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던 합계출산율이 작년에는 1.17명으로 근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1월 출생아수는 3만5100명 수준으로 이러한 통계가 만들어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바야흐로 초저출산 상황으로 진입은 했지만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위기인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인구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경제, 사회, 정치적으로 매우 심각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31년 이후에는 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소위 ‘인구절벽’ 현상이 본격화한다. 인구절벽은 성장잠재력을 둔화시키고 높아지는 노인 부양부담은 투자와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되어 경제적인 부담이 가속화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이 동시에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출산율의 감소로 미래 생산인구는 줄어드는데 그 생산인구가 부담해야 하는 노인부양비는 급속히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추계에 따르면 부양비율이 2015년 37.0%에서 2060년 101.0%로 거의 3배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저출산 문제가 이제는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 위기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정부도 다양한 노력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약 100개의 정책을 추진하며 80조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출산율은 개선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제는 문제의 핵심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해결책의 새로운 방향 설정을 시도해야 할 시점이다.

우선 우리가 그동안 추진해온 방식이 너무 가짓수 늘리기 위주가 아니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80조원이 많은 돈인 것은 틀림없지만 10여년에 걸쳐 100개의 정책에 투입하다 보면 정책당 투자량은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저출산 대책 예산 중 보육의 비중이 75%에 달해 다른 정책들에 대한 투자는 미비한 실정이다. 실효성이 없거나 정책목표와 상관성이 낮은 정책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실행하는 형식이라면 정책목표 달성은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이제는 저출산 대책에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초저출산 추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추세에 대한 반등의 계기를 만들 수 있는 집중력 있고 임팩트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저출산 문제의 핵심 해결방안으로 거론되는 신혼주거대책, 일·가정 양립 제도의 현실화, 다양한 가족에 대한 인정, 노후 소득보장, 아동 양육 환경 개선 등의 과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임팩트 있는 정책을 통해 국민들에게도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의지에 대해 확실한 신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했던 패러다임이 맞는 것인지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 출산율 자체를 높이기 위해서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음이 이제는 명확해졌다.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인 위기이기 때문에 여건이 되지 않는데도 일방적으로 아이를 낳으라는 식의 정책은 자칫 거부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제는 패러다임을 ‘낳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사회’로 바꾸어서 아이를 낳고 잘 기를 수 있다는 희망의 인식을 심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육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정책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보육서비스의 경우는 공급량의 문제를 넘어서 믿고 맡길 수 있도록 서비스의 질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두어야 한다. 육아휴직의 소득대체율을 현실화하고 육아휴직으로 받을 수 있는 직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차별을 근절해야 한다. 보다 넓게는 노동시장에서의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아동은 귀중한 사회적 자원이다. 저출산 시대의 아동은 더욱 그렇다. 아동의 수가 준다는 의미는 아동 하나하나의 가치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아동에 대한 투자는 이제 각 가정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저출산 시대는 아동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아동가족 관련 정부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5% 미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아동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아동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늘어 ‘사회적 양육’의 책무를 국가와 사회가 같이 한다는 믿음을 주어야 저출산 문제도 해결된다. 이미 전 세계 90여개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아동수당의 도입을 통해 자녀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 있는 방안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 모든 아동들이 태어난 가족의 형태나 배경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인정받고 대우받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다양한 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포용이 필요한 이유다. 어떠한 배경에서 태어난 아이도 차별받지 않고 본인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아동의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사회, 그래서 모든 아동이 행복한 사회가 저출산 문제의 궁극적 해법이다.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kimgija@segye.com

◆ 이봉주 교수는…?

아동복지 전문가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5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민간위원 간사와 한국사회복지학회 회장도 맡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학교 사회사업대학원 조교수, 미국 시카고대학교 체핀홀 아동복지 연구소 부교수, 한국아동복지학회 학회장, 정부업무평가위원회 위원, 한국사회복지행정학회 학회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