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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 선거를 놓고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갈라졌다. 미국의 보수 진영은 한국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등 진보 정당이 집권해도 전통적인 한·미 동맹 관계의 토대를 흔들지 말아야 할 것이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의 진보 진영은 이에 반해 한국의 차기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다.
미국 조야는 한국의 차기 정부와 트럼프 정부가 대북 정책을 놓고 파열음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문 후보가 당선됐을 경우를 가정해 문 후보가 트럼프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아니면 트럼프가 문 후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미국에서 전혀 상반된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한국 차기 정부 말을 들어야
미국의 진보 매체인 ‘네이션’ (The Nation)은 6일(현지시간) ‘미국은 한국의 말을 들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센 회오리 바람이 불 것이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면서 독립 국가인 한국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탐사 저널리스트인 팀 셔록이 작성한 기사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네이션은 “문재인 후보가 워싱턴 포스트(WP)와 회견에서 한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것이고, 한국이 자동차의 뒷자리에 앉아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소개했다. 네이션은 “미국 정부, 의회, 펜타곤은 문 후보와 그를 지지하는 한국 유권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이션은 “트럼프가 최근 2개월 사이에 지난 40년간의 그 어떤 미국 대통령보다 더 심하게 한국을 ‘왕따’(alienated)시켰다”고 질타했다. 네이션은 “만약에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치인 및 전문가들이 한국의 입장을 무시한 채 대북 군사 옵션을 밀어붙이면 한국에서 1980년 이래 가장 심각한 반미 바람이 불 것”이라고 경고했다.
네이션은 “한국의 이번 대선을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0년 가까이 보수 정당이 집권해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을 상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네이션은 미국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강행함으로써 한국에서 반미 감정을 촉발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트럼프의 행동과 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면서 “이는 한국이 자유 의지와 정신 및 국가 이익을 지니고 있는 독립 국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미국의 뿌리깊은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과 한국이 ‘큰형-작은동생’ 관계에 있었을지 몰라도 오늘날까지 한국을 ‘주니어 동맹 파트너’로 취급하려는 것은 오만한 태도라고 이 매체가 강조했다.
문 후보가 집권하면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국이 ‘운전석’에 앉겠다는 것이고, 미국은 그런 문 후보의 입장을 존중하고, 지지해야 한다고 네이션이 주장했다.
◆한국 차기 정부가 트럼프 말을 들어야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의 방송인 폭스뉴스는 6일 “북한이 전운(戰雲)을 몰아오고 있는데 한국이 ‘햇볕’ (정책) 얘기를 꺼내고 있다”고 질타했다. 폭스 뉴스는 이날 웹사이트에 게재한 카르롯 전략그룹의 대니얼 맥그로티 대표의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문재인 후보가 개성 공단 확장 건설 필요성을 제기한 데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맥그로티 대표는 “한국 대선에서 선두 주자가 개성 공단의 재개에 그치지 않고, 이를 20배가량 확대하겠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맥그로티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햇볕 정책’의 계승자를 자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광물자원공사(KORES)가 북한산 희토류와 흑연 등을 수입해왔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희토류 등의 수출 수익금으로 핵과 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WMD)를 개발했다는 것이다. 맥그로티는 “트럼프 정부가 글로벌 현안에 대응하면서 미국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더 이상 양손에 떡을 쥘 수는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데 돈을 대주는 동맹국(한국)을 위해 핵 무장한 미치광이(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와 벼량끝 대치를 해야한다면 미국인을 설득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보수 성향의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6일 ‘스릴을 느끼게 하는 한국 대선’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문재인 후보가 북한이 핵무기와 이를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에 성공할 수 있도록 북한을 지원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간단한 아이러니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WSJ는 문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2000년대 중반에 북한에 개성공단을 통해 연간 1억 달러(약 1136억 원)를 지원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문 후보가 지금 다시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공약했다고 WSJ이 전했다.
WSJ는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도록 북한에 압력을 가중하려는 미국의 노력에 훼방을 놓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가 트럼프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실패했다‘는 데 동의한 이유는 김정은과 대화를 재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WSJ이 주장했다. WSJ는 문 후보가 당선되면 중국이 사드 배치 문제 등을 놓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이간질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