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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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구멍 난 방재시스템 보여준 연휴 산불 대응

황금 연휴기간인 그제 강원도 강릉과 삼척, 경북 상주 등 3곳에서 산불이 나 산림 160여㏊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올 들어 발생한 442건의 산불 피해면적(171㏊)과 거의 맞먹는 산림이 사라진 것이다. 또 민가가 불에 타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상주에선 3명이 죽거나 다쳤다. 산림청은 산불경보를 역대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올렸다. 2011년 산불 경보제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연휴 산불은 입산자 실화나 논두렁 소각이 원인으로 추정된다. 국민 각자의 철저한 산불 예방의식이 절실하다. 건조특보가 잦은 봄철에는 적은 강수량과 강한 바람으로 산불이 쉽게 날 뿐 아니라 한번 나면 피해가 엄청나다. 2000년 동해안 산불과 2005년 강원도 양양 낙산사 산불이 대표적이다. 작은 실수로 난 산불이 소중한 생명과 터전, 문화재를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다.

이번 산불에선 허술한 방재시스템이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피해 지역 주민 중에서 긴급재난 안내 문자를 받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강원도와 기상청, 한국도로공사 등에서 국민안전처에 긴급재난문자 송출 요청을 하면 문자송출이 가능하지만 어느 기관에서도 이를 요청하지 않아 문자를 발송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전처는 “현장 조치가 된 상태에서 문자를 보내면 혼란을 가중할 우려가 있어 보내지 않았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안전처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안전처는 지난해 경주 강진 때 두 차례나 홈페이지 먹통과 문자 지연 발송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지진이나 대형 화재 때마다 도마에 올랐지만 안전처의 의식과 자세는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대선후보들은 국민 안전과 관련한 공약을 내놨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소방과 해경은 다시 독립시키고, 육상 재난은 소방이 현장책임을 지게 재난구조 대응체계를 일원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해경을 독립시켜 다시 원위치(해경 부활)시키고 중앙소방본부도 119 소방청으로 독립하는 게 옳다”고 했다. 다들 기구를 이리로 쪼개고 저리로 합치자는 식이다.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연휴 산불 대응을 보면 유관기관 간 기본적인 협의조차 되지 않는 구멍 난 방재시스템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손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