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적폐 청산’을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꾸준히 강조하며 야권 지지층의 견고한 지지를 받아 왔다. 지난 2월 당내 경선 경쟁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선한 의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을 때 문 후보는 “(안 지사 발언에는) 분노가 빠져 있다”고 비판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꺾이지 않는 대세론은 문 후보 자신감 상승의 배경이다. 그는 일부 네티즌이 쓰던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을 차용한 ‘투대문’(투표해야 대통령이 문재인)을 최근 유세장 구호로 외치고 있다. ‘북한 주적’ 공방과 ‘송민순 회고록’ 논란 이후에는 “그렇게 색깔론, 종북몰이 하는데도 저 문재인 지지 갈수록 오르고 있다. 이제 국민들도 속지 않는다. 이놈들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지나친 표현이 때론 독으로 작용했다. 문자 폭탄을 ‘양념’에 빗댄 문 후보 본인의 발언이 그랬다. 측근인 문용식 캠프 가짜뉴스대책단장은 최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지지하는 부산·경남(PK) 민심을 ‘패륜집단의 결집’이라고 했다가 선대위 직책에서 물러났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자강론’을 유지하며 “연대 물어보면 고대 분들이 섭섭해한다”는 아재개그로 일각에서 제기되는 ‘연대론’을 돌파하곤 했다. 지지율이 10% 아래로 떨어졌을 때도 “이번 대선은 안철수 대 문재인의 양강구도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2012년 대선 때 문 후보를 전폭적으로 돕지 않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는 “짐승만도 못하다”고 비판하며 문 후보 측과 날을 세웠다. 4월로 넘어가며 양강구도가 가시화되자 “안철수의 시간이 오니 문재인의 시간이 간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TV토론에서 문 후보 측이 흑색선전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장하려고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 “제가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바타입니까”라고 물었다가 ‘셀프 네거티브’를 한 꼴이 되고 말았다.
홍 후보는 1차 TV토론에서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가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1년 돌리겠다”고 했다가 상대 후보들의 융단폭격을 받았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형사 피고인인 본인부터 세탁기에 들어가야 한다”고 꼬집었고, 홍 후보가 “들어갔다 나왔다”고 응수하자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고장 난 세탁기였나 보다”라고 지적했다.
“안철수를 찍으면 박지원(국민의당 대표)씨가 상왕 된다”는 홍 후보의 주장은 보수 표심을 저격해 안 후보 상승세를 가로막는 프레임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좌파)3대 (우파)1 구도에서 못 이기면 제주 앞바다에 들어가야죠”에 이어 “한강에”, “낙동강에” 빠져 죽자는 거친 표현으로 보수 결집을 호소하기도 했다.
심 후보는 홍 후보의 ‘돼지발정제’ 사건과 관련해 “성폭력 가담자와는 토론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는 등 ‘사이다 발언’으로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동료 의원들의 집단 탈당으로 곤욕을 치른 유 후보를 향해서는 “굳세어라 유승민”을 외치기도 했다.
유 후보는 “이순신 장군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생각한다”며 “국민이 손잡아 주시면 개혁 보수의 길을 계속 가 보고 싶다”고 호소해 탈당 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