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선거를 앞두고 전통시장 활성화를 약속하는 후보들이 있었지만, 그저 ‘공염불(空念佛)’에 그쳤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독 이번 대선에선 전통시장이 소외된 게 아니냐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 후보들이 전통시장과 시골장터를 방문했으나, 여느 때보다 그 빈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상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경기 탓인지 대선 당일 평화시장 주변은 비교적 한적한 모습이었다. |
하지만 오늘은 대선 투표 행렬 때문인지, 아니면 이슬비가 흩뿌리는 흐린 날씨 탓인지 시장 주변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중국 정부와 정치·안보 이슈로 인해 동대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요우커)들이 줄어든 것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을 맞아 시장 상인들이 느끼는 후보들의 공약은 대동소이했다.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마트, 대형쇼핑몰의 입점을 제한하거나 현행 월 2회인 마트 의무휴업일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는 기존 선거 때도 늘 공약으로 제시됐던 내용이라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길가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한 상인은 "기존의 공약을 짜깁기한 것 같다"며 "현재 전통시장이 처한 위기는 심각한데, 각 후보들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각 전통시장별로 처한 상황이 제 각각이다. 일괄적인 정책이 아닌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며 "전통시장의 속사정을 잘 아는 정치인이 우리들의 현실을 정부에 제대로 전달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통시장의 속사정 제대로 아는 정치인이 없네요"
그렇다면 마트 의무휴업일 제도는 전통시장 활성화에 정말 도움이 됐을까.
상인들은 "마트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더 찾는 것 같진 않다"며 "(의무휴업일인) 일요일 전통시장 매출이 더 늘거나 하지도 않았다"고 불평했다.
가격 협상력과 편의성을 갖춘 마트와 단순 경쟁하기 보다는 전통시장의 특성을 살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위기의 전통시장을 살리는 선결과제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평화시장 인근 동대문종합시장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
이어 "정책 및 규제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마트와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며 "정작 소비의 주체인 일반 소비자들은 배제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선 땐 후보들이 우리 시장 들르지도 않았어요"
이번엔 종로구 광장시장 먹거리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시장은 직장인, 대학생 가릴 것 없이 이른바 '먹방'을 선보이는 곳이다. 과거 후보들이 선거 유세를 할 때 들러 시장의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평소와 달리 손님이 많지 않았다. |
이번 대선 유세 과정에서 광장시장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촉박한 선거일정 때문이라곤 하지만 그만큼 전통시장이 소외된 게 아니냐는 게 상인들의 푸념이다.
한 상인은 "선거 때가 되면 잠깐 들러 다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방문한다고 해서 지지하는 이가 바뀌는 게 아니다"라며 "새벽부터 나와 각종 음식을 손질해야 돼 투표할 시간도 없다. 퇴근 이후 직장인 손님들이 몰려 밤 늦은 시간이 되야 장사를 마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상인은 "(내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으나) 이번 대선 땐 후보들이 우리 시장에 들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다녀간다고 하여 없던 호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라며 "표심을 얻기 위해 보여주기 식으로 들르는 건 이제 의미없다. 진짜 상인들이 원하는 대책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보통 정치인들이 전통시장을 들르는 것은 ‘서민과 소통하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제 시장상인들은 이런 모습에 더는 환호하지 않는다. 되레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일회성 방문이 아닌 전통시장 맞춤형 공약을 만드는 게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손님들이 떠난 전통시장에는 따스한 봄임에도 냉랭한 기운만 가득했다.
글·사진=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