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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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특집]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은 전통시장, 대선에서도 소외됐다

우리 서민들의 생계 터전인 전통시장이 최근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역경제의 원천인 동시에 다양한 역사와 정감 어린 문화를 간직한 전통시장은 대형 마트의 확산과 온라인·모바일 쇼핑 등으로 대표되는 소비형태의 변화로 점차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자가 및 임차 점포 비율 등 소유 구조와 관계도 복잡해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전에도 선거를 앞두고 전통시장 활성화를 약속하는 후보들이 있었지만, 그저 ‘공염불(空念佛)’에 그쳤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독 이번 대선에선 전통시장이 소외된 게 아니냐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 후보들이 전통시장과 시골장터를 방문했으나, 여느 때보다 그 빈도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상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경기 탓인지 대선 당일 평화시장 주변은 비교적 한적한 모습이었다.
9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대문 평화시장. 이 시장은 지난 7일 오후 한 대선 후보가 방문했던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대선 투표 행렬 때문인지, 아니면 이슬비가 흩뿌리는 흐린 날씨 탓인지 시장 주변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다. 중국 정부와 정치·안보 이슈로 인해 동대문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요우커)들이 줄어든 것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을 맞아 시장 상인들이 느끼는 후보들의 공약은 대동소이했다. 전통시장 인근에 대형마트, 대형쇼핑몰의 입점을 제한하거나 현행 월 2회인 마트 의무휴업일을 확대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는 기존 선거 때도 늘 공약으로 제시됐던 내용이라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길가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한 상인은 "기존의 공약을 짜깁기한 것 같다"며 "현재 전통시장이 처한 위기는 심각한데, 각 후보들이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각 전통시장별로 처한 상황이 제 각각이다. 일괄적인 정책이 아닌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며 "전통시장의 속사정을 잘 아는 정치인이 우리들의 현실을 정부에 제대로 전달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전통시장의 속사정 제대로 아는 정치인이 없네요"

그렇다면 마트 의무휴업일 제도는 전통시장 활성화에 정말 도움이 됐을까.

상인들은 "마트가 문을 닫는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을 더 찾는 것 같진 않다"며 "(의무휴업일인) 일요일 전통시장 매출이 더 늘거나 하지도 않았다"고 불평했다.

가격 협상력과 편의성을 갖춘 마트와 단순 경쟁하기 보다는 전통시장의 특성을 살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위기의 전통시장을 살리는 선결과제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평화시장 인근 동대문종합시장에도 인적이 드물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전통시장 및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대형유통 업체에 대한 규제와 관련한 일련의 정책들이 다양하게 시행되어 왔음에도 소비자 측면에서의 규제 및 정책 효과에 대한 검토는 부족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책 및 규제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마트와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며 "정작 소비의 주체인 일반 소비자들은 배제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선 땐 후보들이 우리 시장 들르지도 않았어요"

이번엔 종로구 광장시장 먹거리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시장은 직장인, 대학생 가릴 것 없이 이른바 '먹방'을 선보이는 곳이다. 과거 후보들이 선거 유세를 할 때 들러 시장의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평소와 달리 손님이 많지 않았다.
이날 한 상인은 녹두전+마약김밥 한 접시(7000원)를 손님에게 내려 놓고 있었다. 이 음식을 건네받은 손님은 "정말 맛있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젓가락질을 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이번 대선 유세 과정에서 광장시장은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촉박한 선거일정 때문이라곤 하지만 그만큼 전통시장이 소외된 게 아니냐는 게 상인들의 푸념이다.

한 상인은 "선거 때가 되면 잠깐 들러 다들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 방문한다고 해서 지지하는 이가 바뀌는 게 아니다"라며 "새벽부터 나와 각종 음식을 손질해야 돼 투표할 시간도 없다. 퇴근 이후 직장인 손님들이 몰려 밤 늦은 시간이 되야 장사를 마칠 수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상인은 "(내가 못 본 것일 수도 있으나) 이번 대선 땐 후보들이 우리 시장에 들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다녀간다고 하여 없던 호감이 생기는 건 아니다"라며 "표심을 얻기 위해 보여주기 식으로 들르는 건 이제 의미없다. 진짜 상인들이 원하는 대책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보통 정치인들이 전통시장을 들르는 것은 ‘서민과 소통하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제 시장상인들은 이런 모습에 더는 환호하지 않는다. 되레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일회성 방문이 아닌 전통시장 맞춤형 공약을 만드는 게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손님들이 떠난 전통시장에는 따스한 봄임에도 냉랭한 기운만 가득했다.

글·사진=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