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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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표도 하기 전 득표율 버젓이… 대선 당일까지 표심 왜곡

민주주의 축제 선거판 흐린 ‘가짜뉴스’ 기승
‘오전 6~8시 득표율, 홍준표 47%, 문재인 33%, 안철수 9%’

9일 오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글을 확인한 네티즌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60대 이상 노인들이 아침잠이 없어서 보수 후보인 홍준표의 득표율이 높나보다”, “문재인, 안철수 지지자들 투표하러 갑시다” 등의 반응이었다. 글의 내용이 허위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개표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후보들의 득표율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대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내내 기승을 부린 ‘가짜뉴스’가 민주주의의 최대 축제인 선거 당일에도 판쳤다.

각 후보의 득표율이 사실인 양 떠돌고 유권자의 판단을 현혹하려고 교묘하게 조작한 사진이 나돌았다. 투표용지를 둘러싼 괴담이 떠돌면서 선거가 조작됐다는 음모론까지 확산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기 위한 가짜 현수막에 문 후보가 내세운 ‘나라를 나라답게, 든든한 대통령’이라는 문구를 ‘소국은 소국답게, 중국의견 존중하자’로 조작(원 안)해 SNS에 배포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날 서울 서초구 신반포역 사거리에 걸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홍보 현수막에 ‘소국은 소국답게 중국의견 존중하자’라는 문구가 들어있는 사진이 흘러다녔다. 민주당이 지난달 25일 해당 사진을 놓고 “교묘히 합성해 진짜인 것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배포되고 있는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밝혔음에도 여전히 사실인 것처럼 둔갑해 온라인상에서 공유됐다.

26%로 역대 최고의 투표율을 보인 사전투표에 대한 의혹을 조장하는 동영상도 등장해 선거 불신을 부추겼다.

며칠 전부터 나돌기 시작한 이 동영상은 ‘사전투표함이 천으로 된 것이라 조작이 가능하다’, ‘사전투표함을 봉인도 없이 아이스박스 김치통에 관리한다. 사전투표는 무효다’ 등의 내용을 달고 퍼졌다. 이 때문에 개표 조작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회사원 이모(32)씨는 “지난 대선에서도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 등이 일었다”며 “최대한 늦게 찍어야 내가 행사한 한 표가 조작 없이 개표장에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 사전투표를 안 하고 오늘 투표했다”고 말했다. 

19대 대선 투표용지 원본(왼쪽)과 비교하면 가짜 투표용지는 후보들의 이름과 기표란이 여백 없이 붙어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투표용지 조작 의혹 역시 사그라지지 않았다.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4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 온 ‘정식 투표용지가 아닌 제2의 투표용지가 사전투표에 쓰이고 있는데, 이 용지에 투표하면 무효표로 처리된다’는 글이 이날도 회자됐다.

제2의 투표용지는 후보자 이름 간에 0.5㎝의 여백이 없는 것을 말하는데, “나도 그런 투표용지를 받은 것 같다” 등의 반응이 줄을 이으며 음모론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용지는 전국적으로 동일한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출력되며 제2의 투표용지는 없다”고 일축했다.

투표 용지를 접는 방식을 두고도 잘못된 정보가 확산됐다. 후보자가 13명이나 되어 투표용지가 긴데, 이를 가로로 접으면 기표 잉크가 번져 다른 후보에게도 찍혀 무효표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강모(45)씨는 “투표를 하고 이런 내용의 글을 봤다. 나도 가로로 접어 투표함에 넣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빠르게 건조되는 특수잉크를 사용하기 때문에 잘 번지지 않으며, 번지더라도 어느 쪽에 먼저 찍었는지 알 수 있어서 접는 방향은 상관없다”고 선관위는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공정한 선거 진행을 훼손하는 어떤 행위도 용납할 수 없다는 방침”이라며 “선거 당일에 나돈 내용 중에도 중대한 위법 행위가 있으면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8일 현재 가짜뉴스 사건 55건 중 43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게시물 차단 또는 삭제를 요청하고 나머지 12건을 수사해 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