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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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새 정부에 거는 ‘안전강국’의 꿈

겉핥기 처방에 반복되는 인재… 안전시스템 바로 세워라
5월2일 상왕십리역 열차 추돌사고 477명 부상, 5월26일 고양종합터미널 지하공사장 화재 124명 사상(사망 8명), 5월28일 장성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인적피해 29명(〃 21명), 12월1일 원양어선 제501오룡호 침몰 50여명 사망·실종…. 2014년에 발생한 주요 재난사고다.

박근혜정부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이후 부랴부랴 재난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참사의 원흉으로 지목된 해양경찰청과 소방방재청은 없애고 대신 국민안전처를 신설해 두 기관을 흡수했다. 유례없는 대대적인 개혁이라 국민은 한껏 기대했다. 그 바람이 분노로 변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해 사회재난은 16건에 인명피해가 1302명(〃 376명)에 달했다. 2012년 2건, 5명(〃 5명)에서 각각 8배, 260배로 급증했다. 정부의 안전대책이 무색한 수치다. 이듬해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월10일 의정부시 대봉그린아파트 화재로 130명이 사망(5명) 또는 부상했다. 5∼7월에는 메르스(중등호흡기증후군)가 창궐해 38명이 목숨을 잃었고, 9월에는 낚시어선 돌고래호 전복사고로 18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박찬준 사회2부장
세월호, 그 비참하고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 지 3년이 넘도록 ‘안전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지 않는다. 반복되는 산업재해, 대형산불 등은 우리의 목을 노린다. 레퀴엠(진혼곡)이 언제 그칠지 알 수 없다. 액운을 막는 굿판이라도 벌여야 할 지경이다. 붕괴, 화재, 교통사고 등 사회재난 대부분은 인재(人災)다. 대한민국에 참사가 되풀이되는 이유다. 정부와 민간 할 것 없이 안전불감증이 만연하다. 안전 인프라에 정부나 사업체의 투자는 인색하기 그지없고, 규정 위반과 땜질식 사후처방도 근절되지 않는다. 지난 근로자의 날, 협력업체 노동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는 이런 적폐가 빚어낸 후진국형 인재다. 강원도 초대형 산불에도 먹통이 된 재난경보시스템 역시 같은 산물이다. 세월호 유류품에 부착된 ‘안전제일’ 표지는 작금의 안전실태를 방증한다.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데 사활을 걸어 달라고. 보여주기식 안전장치는 모두 걷어내라. 대통령이 직접 안전을 챙길 기구도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복원’이 해답 중 하나다. 정부·지자체의 재난관리 전문성을 강화해 적시에 최선의 조치를 내리게 해야 한다. 소방청과 해양경찰청을 독립시켜 현장 대응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약속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안전처 일반직 공무원(18549명) 중 방재안전직이 1.9%(2016년 말 현재)에 불과한 것은 난센스다. 재난안전 분야 재원 확대는 새 정부가 앞순위 과제로 삼을 만하다. 투자 없는 안전대책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올해 국가 재난안전예산은 약 14조3000억원으로 전체 국가예산의 3.4%에 그쳤다. 세월호 사고 직후 일시적으로 증가(14조7000억원)했다가 다시 감소하는 추세다. 안전의식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안전사고 책임자의 솜방망이 처벌도 더 이상 안 된다. 새 정부에 거는 ‘안전강국’의 꿈이 꼭 실현되길 바란다. 그래서 재난으로 가족을 잃는 불행한 일이 멈추길 빈다.

새 대통령을 맞이한 10일, 세월호에서 사람 뼈로 보이는 유골 두 점이 나왔다. 반가운 소식이다. 머잖아 미수습자 9명이 모두 수습되고, 세월호 침몰원인도 낱낱이 규명되리라 믿는다. 내년 4월은 우리에게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것 같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고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우는 봄비가 싱그러운 계절로.

박찬준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