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에 노무현정부의 호남홀대론이 그럴듯하게 퍼져 있는 게 사실이다. 정찬용 인사수석이 호남 출신 인사를 등용하려 하면 문재인 민정수석이 비토를 놓았다는 식이다. 문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에서 6·25 때 부친이 부산의 양말공장에서 양말을 사다가 전남지역 판매상들에게 공급했는데, 외상 미수금이 쌓여 빚만 지게 됐다고 밝힌 대목도 악의적으로 이용됐다.
박희준 논설위원 |
호남이 문재인을 선택한 속내는 무엇일까. 호남은 진보적 투표성향을 보이면서 될 성싶은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경향이 있다. 2002년 3월16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지역 맹주 한화갑을 버리고 노무현을 선택한 그대로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으로 한을 푼 만큼 앞으로는 통합의 정치를 펼쳐 달라는 바람이었다. 이번에는 안 후보보다 개혁적이고 될 만한 문 후보를, 호남의 국민의당 대신 전국의 더불어민주당을 택한 것이다.
호남홀대론으로 보면 문 대통령은 이번에 호남에 빚을 진 셈이다. 호남 표심이 안 후보 쪽으로 기울었더라면 득표율 30%대 대통령이 될 뻔했다.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호남에 부채의식을 느껴서는 안 된다. 호남이 문 대통령을 선택한 건 통합의 정치에 대한 기대에서다. 인사에서 통합의 정신을 보여주면 된다. 호남 출신이라고 해서 능력이 없는데도 우대하지도, 능력이 있는데도 홀대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호남 출신의 중앙부처 한 공무원은 청와대에서 근무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청와대 근무는 공직자들에게 승진 길로 통한다. 그는 박근혜정부에서 세 번이나 승진 누락했다. 그는 “한두 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으나 동료 선후배한테 축하 인사까지 받은 세 번째 인사 때에는 일할 맛이 나지 않더라”고 했다. 막판에 고시 기수가 아래인 TK(대구·경북) 후배에게 뒤집혔다. 경제부처의 호남 출신 모 과장은 잇따라 후배에게 밀렸다. 집권 후반기에는 꺼리는 청와대 근무를 자원했다. 승진을 기대할 무렵 탄핵사태로 지금은 부처 외곽을 도는 인공위성 신세로 전락했다. 이런 불이익을 없애 달라는 게 호남 표심이다.
이전 정부에서 잘나간 공직자 중에도 실력 있는 이들이 많다. 흔히 청와대에 근무하는 공무원을 ‘늘공’과 ‘어공’으로 나눈다. 늘 공무원이었던 사람과 어쩌다 정무직으로 들어간 사람을 말한다. 정권 말기 청와대 ‘늘공’은 불안하기만 하다. 부역자라는 낙인이 찍혀 친정 부처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늘공’에도 구분이 있다. 줄을 타고 청와대에 입성한 ‘줄공’과 실력으로 올라간 ‘실공’이 있다. 능력 있는 ‘실공’까지 공직에서 내보내는 건 국가적으로 손해다.
문 대통령은 어제 취임식에서 “2017년 5월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첫날 국회 여야 당사를 찾아 협치를 실행에 옮긴 것도 신선했다. 앞으로 문 대통령의 진정성은 이어질 인사에서 드러날 것이다. 지역이나 계파를 떠나 능력만을 기준으로 하는지가 관건이다. 챙길 측근 그룹이 많겠지만 19년간 자신을 모신 개자추를 오히려 멀리한 중국 진나라 문공의 지혜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약속대로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것만이 호남의 지지에 보답하는 길이다.
박희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