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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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한국 단색화의 거장 ‘달항아리’ 작가 만나다

박서보 “달항아리, 몰입의 경지에 달해”… 이용순 “그저 빠져서 만들 뿐”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문화절정기인 18세기의 산물로 평가받고 있다, 금사리 등 조선백자가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꽃망울이 터지듯 나온 것이다. 농익은 조선백자의 토양에서 마음껏 만들어 본 기물이다. 기형에서도 전통적 백자사발의 범주를 벗어나고 있다. 그것도 백자사발 두 개를 합쳐서 만들었다. 전통적 장르의 해체이자 융합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보편적 해석도 허락되지 않는다. 누구는 임신한 여인의 풍만한 모습을 연상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이름처럼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떠올린다. 개별적으로 다양한 해석의 문이 풍성하게 열려 있다는 얘기다. 어떤 문헌에도 용도와 모양새를 규정한 것이 없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형적인 포스트모던의 모습이다. 이용순(60) 작가의 달항아리도 그런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한국단색화의 거장 박서보(86) 화백이 생존 달항아리 작가 중 최고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인사동에서 만났다.

이용순 작가(왼쪽)가 최근 자신의 달항아리를 최고로 꼽는 박서보 화백과 첫 만남을 가졌다. 이 작가는 “만들면 만들수록 달항아리가 한국 미술의 특색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표상 같은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서보 화백은 스승 이마동 선생과 평론가들이 알아주는 안목을 지닌 작가로도 정평이 나있다. 생전에 이마동 작가는 자신의 전시작품을 제자인 박서보에게 맡길 정도였다. 감(느낌)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재빨라 평론가들은 ‘미학적 무당’이라 칭하기도 한다.

박 화백은 “이용순 작가는 옛 도자(골동)수리와 재현을 통해 터득한 경지가 예사롭지 않다”며 “형식이나 테크닉을 넘어서 몰입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고 극찬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이 작가는 “그저 내가 빠져서 만들 뿐”이라며 겸연쩍어했다. 두 사람은 그동안 작품으로만 소통했지만 얼굴대면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 화백은 이 작가의 달항아리에서 자신의 작품을 본다. 무한반복의 몰입에서 오는 무목적성의 경지다. 오로지 흙과 불, 물레와 합일된 작가의 열중이 목적마저 비워내고 있다는 것이다.달항아리는 어떠한 문양도 없이 단순한 형태와 유약, 태토(흙)만으로 일궈냈다는 점에서 단색화의 전형이라는 얘기다.

박 화백은 단색화의 요체는 반복이라 했다. 단순함의 반복이 삶이자 나를 살리는 길(수행)이라는 주장이다. 서양의 다색주의의 상대개념으로서의 모노크롬(단색주의)과는 그런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이용순의 달항아리에서 반복을 통한 손끝 감각, 몰입의 결과가 읽혀진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승려들의 수행자세가 떠올려진다. 욕심과 화내는 마음, 고집스러운 마음을 버리고 청정하고 고요한 마음, 지혜로운 마음을 갖기 위해 기본 수행자세를 반복하게 된다. 왼손 위에 오른손을 교차하여 자연스럽게 단전 부위에 가지런히 모으는 자세는 마음을 밖이 아닌 안으로 모으는 자세다. 두 손을 가슴에 마주하는 합장은 흐트러진 마음을 일심으로 모으는 자세다. 만나는 상대도 고요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큰절(오체투지)은 교만과 어리석음을 떨쳐버리는 가장 경건한 예법이다. 이처럼 한결같이 하는 것(반복하는 것)이 수행이라 했다. 작가에게도 반복된 프로세스가 수신이 되고 작품이 된다.

달항아리들은 사람 얼굴처럼 모두가 다르다. 빛에 따라 다양한 백색을 보여준다. 자연을 닮은 조형물이란 얘기다. 댕그랗게 생긴 것이 아니라 원만하게 잘생겨 마음을 평안케 해준다. 입은 크고 몸체에 비해 밑굽이 좁은데도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몸통과 굽 사이의 직선으로 인식되는 선으로 되레 수평선 위에 둥실 떠 있는 달을 연상시킨다.

색도 약간 푸른 기가 도는 설백에서 불투명한 유백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박서보 화백은 설백의 백자사발이 비워져 있음에도 맑고 푸른 물이 담겨 있는 느낌에 이끌려 달항아리에까지 이르게 됐다.

이용순 작가는 20대에 옛도자 수리로 도자기에 입문했다. 어느 순간부터 전통 명품도자 같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결혼반지까지 팔아 3년의 세월을 버티며 남몰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을 밤 어느 지인의 대청마루에 놓인 조선달항아리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 또 하나의 달이 떠 있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달항아리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계기다. 어느 시기부터 일본인들의 주문이 쇄도했다. 사간 이들이 조선의 달항아리로 일본의 뮤지엄에 기증하거나 판 것도 있다는 후문도 들었다. 당연히 작가는 조선의 무명 도공으로 포장됐을 것이라 짐작만 할 뿐이다. 이미 오래전의 일들이다.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를 아끼는 한 컬렉터가 이름을 걸고 작품을 만들라는 권유가 있으면서 수년 전부터 작가 이름을 내걸기 시작했다. 자식들에게 재현품이나 만드는 무명의 도공이 아니라, 떳떳이 자랑할 수 있는 작가의 아버지가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설득에 고집을 꺾었다. 백설기 같은 흙과 소나무재가 섞인 유약, 그리고 그의 손끝이 한데 어우러져 ‘이용순표 달항아리’가 탄생됐다.

그는 요즘도 ‘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을 걷어내려고 노력을 한다. 그냥 몸에 체득된 것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때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름보다 한결같이 하는 것에 마음을 모으고 있다. 아마도 조선 도공이 그랬을 것이다.

그의 달항아리를 응시하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손으로 누르면 들어갈 것 같기도 하다. 조선시대 명품인 금사리 도자색을 방불케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절미 속살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괜스레 마음이 풍성해지는 기분이다.

그는 늘 뒷머리가 쭈빗거릴 정도로 집중해서 작업에 임한다. 그럼에도 때론 장작가마의 예상치 않은 요변에 허탈해하기도 한다. 보름 정도 축 처져서 절망감에 술에 취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오기로 다시 일어선다고 말했다.

그는 달항아리의 매력은 포스트모던적 성질에 있다고 말한다. 일정한 법주와 규격에서 벗어나는 지점의 미학이다. 비대칭 기물이 주는 부조화의 조화. 기운 대로의 조화, 똑바르지 않은 안정감 등이 달항아리의 진장한 맛이라고 했다.

이용순 도예가는 24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통인옥션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조만간 열리는 영국전시 프리뷰 성격이다.

그가 달항아리를 여러 개 꺼내 보여주었다. 공간과 빛에 따라 보이는 각양의 얼굴을 보라고 권했다. 카메라에 그 색들을 담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그것이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는 달항아리의 매력이다. 달항아리가 지금도 여전히 현대미술의 취향마저도 만족시키는 이유가 아닐까.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