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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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노무현 8주기 기일에 박근혜 첫 재판 '얄궂은 운명'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라 추도식 분위기 예전과 사뭇 다를 듯 / 뇌물사건 첫 재판 다음날은 김재규 사형 집행일… 착잡한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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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인생에서 5월은 아마도 가장 뜻깊은 달일 것이다. 5월9일 실시한 대선에서 당선돼 불과 하루 만인 5월10일 정식으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내린 지시 중 하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허용한 것이고, 취임 후 처음 참석한 대규모 공식 행사도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5월의 인연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5월14일 당시 변호사이던 그는 헌법재판소 1층 로비로 모여든 수십명의 기자 앞에 섰다. 2개월 심리 끝에 헌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을 선고한 직후였다. 탄핵심판 내내 대통령 대리인단 간사로 누구보다 분주했던 그는 커다란 두 눈에 그렁그렁 이슬이 맺힌 채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9년 5월23일 그는 서울과 먼 경남 양산에서 긴급 브리핑을 열었다. 초여름 날씨라 무덥기도 했지만 넥타이를 생략한 차림에서 그날 아침의 다급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초조한 표정의 기자들에게 문 대통령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이라며 “노 전 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30분경 이곳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운명하셨다”고 전했다.

이렇듯 문 대통령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바로 ‘노무현’이다. 2004년에는 국회가 탄핵한 노 대통령 변론을 맡아 권좌에 복귀시켰으나 2009년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으로서 의뢰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픔을 겪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를 맞아 23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여느 해처럼 추도식이 열린다. 정권교체 직후인데다 노무현정부 출신 인사들이 새 정부 요직에 줄줄이 기용되고 있으니 올해 행사는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다를 듯하다.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 등 유족 외에 정세균 국회의장,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 민주당 추미애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권선택 대전시장, 임채정 전 국회의장 등이 참석한다.

그런데 같은 날 김해에서 380㎞가량 떨어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첫 재판을 받는다. 한때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 박 전 대통령에게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그저 구금의 나날일 뿐이다. 정확히 8년 간극을 두고 두 전직 대통령을 덮친 가혹한 운명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가 기소한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는 박 전 대통령이 첫 공판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지난 3월30일 구속을 앞두고 법원 영장심사를 받을 당시 그는 판사 앞에서 “어떻게 하면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가 목숨 바쳐 지켜 오신 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까 하는 생각뿐이었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첫 공판에서도 피고인한테 허용되는 모두진술 시간을 빌려 아버지 얘기를 꺼내며 무죄를 호소할 가능성이 있다.

재판 이튿날인 24일은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37주기 기일이다. 박 전 대통령에게는 ‘불구대천의 원수’라 할 김재규는 사건 7개월 만인 1980년 5월24일 서울구치소 내 사형장에서 교수형이 집행됐다. 그때와 위치는 달라졌으나 지금 박 전 대통령이 수감된 곳도 서울구치소다. 10.58㎡(약 3.2평) 넓이 독방 안에서 그는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