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4일 신형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15일 보도했다. 사진은 북한이 발사한 직후의 화성-12형 미사일. 연합뉴스 |
북한은 다르다. 초기에는 구소련의 스커드 탄도미사일을 역설계하는 방식으로 보편적인 법칙을 따랐지만,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 등장한 미사일들은 북한이 ‘주체탄’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은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현재 북한이 확보하고 있는 탄도미사일 기술은 1981년 이집트에서 반입한 이래 30여년 동안 성능개량을 거듭해온 구소련제 스커드 미사일, 냉전 시절 구소련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을 맡아온 마케예프 설계국을 통해 밀반입한 R-27 SLBM에서 확보한 기술이 근간이 되어왔다. 이를 통해 스커드, 노동, 무수단, 은하-3호 등 다양한 액체엔진 발사체들이 개발됐다. 여기에 지난 2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고체엔진 미사일 북극성-2형을 통해 확보된 기술에 지난 14일 시험발사된 화성-12형 기술이 추가된다. 이렇게 확보한 미사일 기술을 북한은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까.
구소련의 SS-9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
주목해야 할 미사일은 최근 발사된 화성-12형이다. 북한이 지금까지 발사한 탄도미사일 중 가장 뛰어난 성능을 과시했으며 지난 3월 18일 지상분출시험에 성공한 백두산 계열 대출력 액체엔진을 탑재함으로서 ICBM 개발의 족쇄였던 1단 추진체의 신뢰성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기 때문이다.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화성-12형 발사 당시 사진과 영상을 보면 기존의 북한 미사일과 차이점이 눈에 띤다. 화성-12형은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길이인 19~20m보다 짧고 무수단(12m)보다 긴 17~18m 정도로 추정된다. 무수단보다 더 긴 동체를 가졌기 때문에 더 많은 연료와 더 강한 추력을 갖는 엔진을 탑재할 수 있어 지난해 6월 무수단 발사 당시 최대고도 1400여km보다 높은 2111.5km의 고도를 90도에 가까운 고각발사를 통해 기록했다.
화성-12형 발사 영상을 보면 발사차량(TEL)에서 쏘아올리는 기존 발사방식과 달리 지상에 고정된 간이 발사대를 이용하는 모습이 눈에 띤다. TEL은 미사일을 운반하고 기립하는데 쓰인다. 이같은 방식은 구소련에서 쓰이던 것으로 2015년 준중거리 탄도미사일(MRBM) 이마드 시험발사 등 이란의 미사일 발사에서도 종종 사용됐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탄도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특수차량의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귀중한 TEL이 폭발 등으로 파괴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화성-12형 미사일 발사준비현장을 지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러한 형태의 재진입체는 대기권 재돌입 시 활공궤도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얻기 힘들다. 마커스 실러 독일 ST 애널리틱스 박사는 16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ICBM에 조종 장치가 없는 핵탄두를 탑재하면 작은 계산 착오에도 공격 목표에서 수km 이상 쉽게 빗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하려면 핵탄두의 위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북한이 화성-12형 발사 당시 관영매체를 통해 “위력이 강한 대형중량핵탄두 장착이 가능하며 재진입체 기술도 확증됐다”고 주장한 것도 이같은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의 핵실험에서 쓰인 핵폭탄의 위력이 최대 20kt을 넘지 못했다는 점과 미국, 러시아 수준의 재진입체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상황에서 북한의 주장은 장기적인 목표를 천명한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 진전도 있다. 지난해 6월 무수단 발사 당시 엔진 분화구 옆에 보였던 격자형 보조 날개인 그리드 핀(Grid Fin)은 화성-12형 발사에서 보이지 않았다. 무수단과 븍극성-2형 미사일은 자세 제어와 안정성을 위해 그리드 핀을 설치했으나, 화성-12형은 보조엔진인 버니어 엔진(Vernier engine)을 사용했다. 액체엔진에서 압력을 배분하는 가압체계와 대출력 엔진의 신뢰성 등도 검증됐다. 1단 추진체인 화성-12형에 단을 추가하거나 엔진을 2개로 묶으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ICBM 완성에 다가설 수 있다.
북한이 14일 발사한 화성-12형 미사일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
고각발사가 아닌 정상각도 발사 시 4500~5000km를 날아갈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화성-12의 발사 성공으로 북한은 ICBM의 최소 사거리로 평가되는 5500km에 근접한 기술수준을 과시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해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미국, 한국의 입장을 바꾸도록 하기 위해 북한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새로운 전략적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일본 방공식별구역(KADIZ)을 넘지 않으면서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속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대 5000km까지 미사일을 날려보낼 수 있는 능력을 과시했지만 섭씨 7000도의 고열을 견딜 수 있는 ICBM급 재진입체 기술이 확보되지 않으면 미국 본토 공격능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사일 기술 개발과정에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사일을 자주 쏘아올리면서 시행착오를 수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련 기술 검증 및 성능개량을 위해 새로운 재진입체 기술을 적용한 탄도미사일을 수시로 시험발사할 것으로 보인다.
신형 ICBM을 보여줄 가능성도 있다. 화성-12형의 엔진은 지난 3월 지상분출시험에 성공한 80tf(톤포스:80t 중량을 밀어 올리는 추력) 수준의 백두산 엔진이다. 화성-12형에 북한이 수십년 동안 사용해 신뢰성이 입증된 스커드 엔진을 장착한 2단 추진체를 얹으면 비행거리 5500km를 넘기는 ICBM을 만들 수 있다. 구소련이 1967년 실전배치했던 UR-100(나토코드:SS-11 SEGO) ICBM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미니트맨처럼 값싸고 효율적인 ICBM으로 평가받는 UR-100은 길이 17m에 탄두중량 1.5t, 90tf 수준의 1단 추진체를 갖고 있는 2단 액체엔진 ICBM이다. 화성-12형의 길이는 17~18m로 추정되고 엔진 추력도 80tf다. KN-14처럼 뭉툭한 모양의 재진입체를 사용하면 UR-100처럼 1960년대 구소련 수준의 2단 ICBM을 만들 수 있다. 실제 발사한 적이 없는 KN-08/14를 노동당 창건일 열병식 등에 공개한 전례가 있고 지난달 15일 김일성 생일 105주년 열병식에서 러시아의 토폴-M, 중국의 둥펑 ICBM을 연상시키는 신형 ICBM을 공개한 만큼 앞으로 진행될 주요 국가 행사에서 UR-100과 유사한 개념의 신형 ICBM을 공개할 가능성이 있다.
구소련의 SS-11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
화성-12형 시험발사가 성공하면서 북한은 ICBM 개발에 한발 더 다가섰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재진입체 기술만 해결되면 2~3년 안에 ICBM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대응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겠다는 북한의 20여년에 걸친 야심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 위협을 용인할 수 없다는 미국과 그것만이 살 길이라 믿고 20여년을 달려온 북한이 대화의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북한의 또다른 전략적 도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1960년대 기술로 ICBM을 만든다고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한 발이라고 본토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그 자체로 이미 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다음 행보는 어떨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북한은 자신들이 설정한 일정에 따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할 점이라는 것이다. 안보와 체제 유지를 판돈으로 건 북한의 미사일 도박에 한국과 미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