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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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erSports] 주희정의 눈물… 나이 아닌 기량이 은퇴 결정해야

지난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50m 권총에서 3연패를 달성한 ‘사격 황제’ 진종오는 금메달을 따고 난 뒤 인터뷰에서 격한 심정을 토로했다. ‘혹시 도쿄올림픽에서 4연패에 도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진종오는 “후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은퇴할 마음이 전혀 없다.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질문은 안 받았으면 좋겠다”며 “정정당당히 선발전에서 경쟁해야 한다. 제가 좋아하는 사격을 할 수 있게끔 응원해 줬으면 한다. 은퇴하라고 하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걸 빼앗기는 거지 않나”라고 발끈했다. 진종오는 지난 20일 독일 뮌헨 올림픽사격장에서 열린 2017국제사격연맹(ISSF) 뮌헨 월드컵사격대회 남자 50 권총 결선에서 230.5점을 쏴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지만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로 변함없는 기량을 유지한다.

진종오의 발언이 떠오른 건 지난주 은퇴한 주희정을 보면서다. 1997∼1998시즌 원주 나래에서 데뷔한 주희정은 지난 시즌 서울 삼성을 끝으로 20년 프로농구 선수생활 마침표를 찍었다. 주희정은 은퇴기자회견에서 “정규리그 끝나고 아이들이 1년만 더 뛰어 달라고 물어봐서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는데 못 지켜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프로이기에 후배들은 먼저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저는 눈치를 많이 봤는데 후배들은 실력으로 보여줘 구단의 인정을 받았으면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노장으로서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기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희정의 은퇴 발표는 너무 뜻밖이라 기자도, 팬들도 모두 놀랐다. 모 구단 감독은 “지금 당장 시장에 나와도 데려갈 팀이 여럿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불혹의 주희정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코트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띠동갑 후배들과 늦은 밤까지 개인훈련을 할 정도로 경기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지난 시즌 주희정은 정규리그 출전시간은 다소 줄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고비 때마다 3점슛을 척척 넣었고 리딩 가드로서 경기를 조율했다. 게임을 마치고 들어온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플레이뿐 아니라 팀 전체를 생각하는 관록을 엿볼 수 있었다. 취재석에서는 주희정을 두고 “1∼2년은 거뜬히 더 뛰겠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그는 결국 코트를 떠났고 조만간 코치 연수를 떠날 예정이다.

진종오와 주희정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프로’라면 오직 ‘실력’으로 승부를 겨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종목인 사격과 달리 팀스포츠인 농구에서는 주희정이 봐야 할 눈치가 너무 많았다. 한 경기당 1군 엔트리는 12명이다. 주희정이 뛰면 그만큼 후배에게 돌아갈 기회가 줄어든다. 그는 기량이 뛰어남에도 후배의 기회를 빼앗는 건 아닌지 고민한 것 같다. 코치보다 많은 나이도 주희정이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데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미국프로농구(NBA)에서는 불혹의 마누 지노빌리(샌안토니오)가 건재하고,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는 불혹의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유벤투스)이 팀의 리그 6연패를 이끌지 않았나. 프로 세계에서 기량이 아닌 오로지 나이 때문에 자리를 물려주는 한국만의 문화는 이제 사라지길 바란다.

최형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