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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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토대 고강도 개혁… 檢 이어 경찰 ‘발등의 불’

인권위 위상 제고 지시 의미 / 文, 대선 공약에도 없는 깜짝 카드 / 조국, 경찰의 인권침해 직접 거론 / “인권 보호해야 수사권 조정” 기류 / 인권위, 2018년 독립기구 격상 기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보름 만에 꺼내든 ‘국가인권위원회 위상 제고’ 카드는 대선 공약집에도 없는 예기치 못한 지시였다. 인권위는 대환영했고 경찰은 새 정부의 수사권 조정 의지를 재확인한 것에 안도하면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의 25일 지시는 인권 중심 국정운영을 도모함으로써 지난 9년 보수정권과 차별화를 꾀하는 한편 권력기관 개혁에 속도를 내겠다는 다목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공권력 감시가 주요 기능 중 하나인 인권위에 접수된 인권침해 진정사건의 절반 이상이 2016년 말 현재 구금시설(30.2%)과 경찰(20%), 검찰(3.2%), 군(2.1%) 등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 후 기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특히 문 대통령이 인권위 권고의 핵심 사안은 불수용하면서 부가적 사안만 수용하는 행태를 ‘무늬만 수용’으로 규정하고 ‘권고 수용지수’를 기관장 평가 항목으로 삼기로 한 것은 이들 기관의 고삐를 틀어쥐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인권침해 문제를 콕 집어 거론한 경찰은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경찰은 이명박·박근혜정부 기간 ‘정권 유지의 최전선’에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때 발생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은 경찰로서 특히 뼈아픈 대목이다. 물대포를 시위 진압용으로 사용하면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사용기준을 법령에 명시하라는 2008년·2012년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이 사건 발생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지시 뒤 경찰은 그간 인권위 권고사항을 재검토하면서 수사구조와 경비업무 등을 인권친화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동안 ‘경찰의 수사권 남용을 검찰이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에 밀렸던 경찰은 이참에 수사 관행을 확 바꿔 수사권 조정에 한 발 더 다가가겠다는 각오다.

이날 지시의 핵심 타깃은 오히려 검찰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권침해 사건이 가장 많은 구금시설을 관장하는 곳이 법무부이고 검찰도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수사 과정의 적법성과 인권침해, 방어권 보장 여부 등을 따져 달라는 진정에서는 검찰도 자유롭지 못했다. 지금껏 기관장 인사 중립성 강화와 ‘권력 눈치보기식 수사 관행’ 척결 등에 초점이 모아졌던 권력기관 개혁 드라이브에 ‘인권친화적 공권력 행사’가 주요 개념으로 추가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며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날 지시가 각 정부부처 인권 담당 부서의 승격 및 권한 강화, 인력·예산 확충으로 이어질지도 주목된다. 현재 각 부처는 국방부 인권담당관실,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등 주로 과 단위로 운영하고 있다. 법무부는 참여정부 때 인권국을 신설했으나 예산과 기능이 범죄 피해자 보호에 치우쳐 있고 자체 인권정책 개발이나 감시·교육 등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이날 지시에 인권위는 환영 입장을 내놨다. 인권위는 지난 9년간 조직 정원이 반 토막 난 것은 물론이고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용산참사 등 주요 사안에 입장조차 못 내는 ‘암흑기’에 빠져 있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국회 개헌특위에서 인권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만큼 인권위 안팎에서는 향후 개헌을 통해 명실상부 독립기구의 위상을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참여정부 시절 인권위가 이라크 파병 반대 성명을 낸 것에서 보듯 인권위 위상이 강화하면 청와대도 감시의 예외가 될 수 없다”며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 지시는 지난 정부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 내용까지 담겼다”고 평가했다.

유태영·박현준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