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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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돈봉투 만찬’ 감찰, 시늉 낼 거면 접는 게 낫다

‘돈봉투 만찬’ 사건을 감찰하는 법무부·대검찰청 합동감찰반이 사건 현장인 서울 서초동 식당을 조사하면서 그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감찰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감찰반은 “식당 주인이 ‘최근 기자들이 취재를 많이 와서 장사도 안 되는데 밥이나 먹고 가라’고 해서 점심식사를 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식당 관계자에게 당시 상황을 꼼꼼하게 확인했고 당일 결제전표 등을 확보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감찰반은 현장조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밥 한 끼 먹은 게 무슨 잘못이냐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감찰공무를 수행하면서 다른 곳도 아닌 사건 현장에서 식당 주인이 밥 먹고 가란다고 밥을 먹은 것은 법무·검찰 당국이 어떤 자세로 감찰에 임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백번 양보해 해명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 끈을 고쳐 쓰지 말아야 하는 감찰반으로서의 직분을 지키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돈봉투 만찬은 국정농단 검찰 특별수사본부 본부장인 서울중앙지검장과 특수본 검사 등 7명과 조사 대상이었던 법무부 검찰국장을 비롯한 검찰국 간부 3명이 격려금 명목의 돈봉투를 서로 주고받은 저녁 술자리를 말한다. 이 사건이 불거지면서 검찰은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다. 관례라는 법무부·검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모임과 돈봉투의 성격을 놓고 논란이 확대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고,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특별감찰을 지시했다. 이 여파로 법무부 장관 권한대행과 대검 차장이 사의를 밝혔고 서울지검장과 검찰국장은 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다.

대통령이 감찰을 지시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감찰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자 보안 유지 등을 이유로 감찰 상황을 공개하지 않던 감찰반은 어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검찰국장 등 만찬 참석자 10명과 참고인 등 20여명의 대면조사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감찰을 하기로 했을 때 “제대로 된 감찰이 되겠느냐”는 의문이 쏟아지면서 특검이나 특임검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많았다. 새 정부 들어 검찰은 유례없는 대대적인 수술대 위에 올라 있다. 이번 감찰이 시늉이나 내며 제식구 감싸기에 그친다면 검찰에 가차 없는 메스가 가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