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광주의 한 병원에서는 간호조무사 C(당시 33세·여)가 마약류 마취제인 펜토탈소디움을 투약하고 수술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마약류 마취제는 병원에서 다중 잠금장치를 갖춘 시설에 보관하고 재고량 및 사용자의 인적사항을 기록하도록 돼 있었지만 C씨가 사용한 약물은 그냥 도난당한 것으로 돼 있었다.
병원 등에서 환자 치료를 위해 규정에 따라 사용돼야 할 마약류가 적잖은 곳에서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현행 의료법 및 수의사법 등에 따라 의사·치과의사·한의사를 비롯한 수의사, 약사 등은 의료목적으로 마약 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관리하고 처방하도록 책임과 권한을 지닌다. 의사면허를 취득하면 자동으로 마약류 취급 권한이 주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일부 의료인의 도덕적 해이로 마약류 관리에 구멍이 뚫려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9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매년 100명 내외의 의료인 마약류사범이 발생하고 있다. 연간 1만여명에 달하는 전체 마약류사범에 비하면 1% 내외로 비중이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조제, 관리, 판매, 처방전 발급 등의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라 마약류 관리내역을 조작하거나 은폐하더라도 적발이 쉽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라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련법에 따라 마약류를 조제 및 판매, 연구, 판매할 수 있도록 약 3만명(지난해 기준)의 취급자를 지정하고 있다. 이 중 의사 등 의료업자가 3만3877명으로 절반이 넘고 약사(관리자)는 2673명이다. 이들은 마약류 수량 관리 및 사용에 대한 기록을 작성해야 하고, 잔여마약류 폐기 여부 등 제대로 조치하고 있는지를 관계기관 공무원이 감독한다. 그러나 점검 공무원 수에 비해 마약류 품목이나 취급 병·의원, 의사의 수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사실상 제대로 된 감독관리가 어렵다. 마약류의 분실과 도난 사고가 생겨도 관할 보건소에 신고하지 않으면 이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마약류의 지정·관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해외 밀반입·반출은 관세청, 단속은 검찰과 경찰 등 관련 업무가 여러 기관으로 나뉘어 통합적인 관리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을 대상으로 관리법이나 윤리의식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왔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내년 5월 시행 예정인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 보고제도는 의료인에 대한 관리 허점을 상당 부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모든 마약류 취급 승인자의 취급 내역을 시스템에 보고하도록 하고 프로포폴 등 향정신성의약품을 중점관리품목으로 지정, 운영하는 것이다.
의료인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행위와 마약류 취급에 대한 보고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점관리품목에 대해서는 일련번호가 부여된다. 의료인을 포함한 모든 마약류 취급자는 중점관리품목을 제조·수입·판매·구입·조제·투약 등 취급한 경우 3일 이내 보고해야 한다. 중점관리품목 외 일반관리품목의 보고 기한은 10일이다. 이 시스템은 당초 다음달부터 전체 마약류 중 마약을 시작으로, 오는 11월 향정신성의약품, 내년 5월 동물용마약류 등 보고 대상을 확대할 예정이었으나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는 차원에서 내년 5월 일괄 시행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식약처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의료용 마약의 처방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나 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만, 시스템 도입 후 시간이 지날수록 약물 처방에 대한 많은 데이터가 누적되기 때문에 관련 기준도 점차 자리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