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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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이토록 문학적인 리더들

정치는 설득하고 세상을 지켜
문학은 공감하고 인간을 바꿔
佛마크롱 문학·예술 조예 깊어
픽션을 통한 새로운 꿈은 축복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弱者)라는 말을 인정하면 문학은 언제나 약자다. 문학은 세상을 지나치게 사랑하니까. 하지만 강자(强者)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강자라는 말을 인정하면 문학은 언제나 강자다. 문학은 인간보다 오래 지속되니까. 그렇다면 문학을 사랑하는 대통령은 어떨까. 약자일까 아니면 강자일까. 정치는 대답하고, 문학은 질문한다. 정치는 설득하고 문학은 공감한다. 정치는 세상을 지키고 문학은 인간을 바꾼다. 이런 단순하고 촌스러운 이분법적 대립을 무화시키면서 정치와 문학을 조화롭게 공존시켜 주는 대통령의 모습이 지금 이 시대에도 가능할까.

최근 역대 최연소라는 40살의 젊은 나이에 취임한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때문에 이런 궁금증이 더욱 증폭된다. 짧은 경력에도 당당히 대통령의 자리까지 오른 그의 정치적 저력이야 프랑스 국민이 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게도 인상 깊었던 것은 24살 연상이라는 아내의 나이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보여준 러브스토리 때문이다. 과거 40살의 문학교사였던 아내와 16살의 문학청년이었던 마크롱을 맺어준 건 그가 직접 쓴 시였고, 문학적 식견을 공유한 그들은 현재까지도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사랑하고 있는 듯하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이에 걸맞게 논쟁을 벌일 때나 연설을 할 때 마크롱은 문학작품 속의 명구를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르튀르 랭보, 앙드레 지드, 미셸 투르니에 등을 탐독한 그의 독서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며, 정치의 품격을 한층 높인다는 것이다. 가령 상대편이 남의 말만 추종하는 비주체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하면 자신은 ‘스스로를 벌하는 사람’이라는 보들레르의 시를 끌어와 되받아치는 식이다. 이런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대통령도 감탄스럽지만, 그것을 알아듣고 인정해주는 정치 문화가 더 부럽다. 역시 고수(高手)는 고수를 알아본다.

이처럼 문학이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대통령이다 보니 다른 나라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그 영향을 발견하게 된다. 문학은 문학을 알아본다. 대통령 취임 직후 함께 기자회견을 한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헤르만 헤세의 시구 중 “모든 시작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습니다”를 인용하며 마크롱에 대한 기대를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반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직전에 만난 미국의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과는 악수를 하면서도 기싸움에 치중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140자 헤밍웨이’로 자처하며 트위터에 열심인 트럼프에게서는 정작 헤밍웨이의 향취를 느끼지 못했던 듯하다. 문학은 가짜문학도 알아본다.

자국 대통령의 문학적 수준을 궁금해하는 것이 국민으로서의 권리라고 생각한 작가도 있다.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작인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원작자이자 캐나다의 베스트셀러 작가 얀 마텔은 101통의 편지와 거기서 언급한 책을 문학적 감수성이 부족했던 그 당시의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에게 보낸다. 그 이유에 대해 책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에서 다음처럼 밝힌다. “픽션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든 정치인이 원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 더 나은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결국 정치와 문학의 관계는 반의어가 아닌 유의어, 복합명사가 아닌 합성명사에 가깝다. 더욱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모든 조직의 리더가 픽션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꾼다면 문학과 정치의 만남은 악몽이 아닌 축복이 될 수 있다. 문학에 특권을 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문학을 홀대해서도 안 된다. 당연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이를 쉽게 실천하기 위해서 문학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오래 사랑하는 약자이자 강자인 정치적 리더들이 중요하다. 더 당연하지만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그 어느 때보다 바로 지금이 이런 리더들을 가질 수 있는 꿈을 꾸기에 적당한 때인 것 같다. “모든 시작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습니다”를 다시 인용하는 것으로 그 이유를 대신한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