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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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매주 反트럼프 시위… 미국판 ‘촛불혁명’ 꿈꾼다

진보진영 ‘레지스탕스’ 운동 주목/올 4월만 950회… 최소 63만명 거리로/한 달 만에 집회 참가자 62%나 늘어/폭력 사태·구속자 없이 평화적 진행/어린 자녀 손잡고 나온 부모도 많아/한쪽선 맞불시위… ‘태극기 집회’ 유사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으로 일반 시민의 촛불시위가 주말마다 전국을 강타했다. 촛불시위는 ‘촛불혁명’으로 이어져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 정부 출범의 기폭제가 됐다.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워싱턴 등 주요 도시에서 반트럼프 시위가 거의 매주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 등에 맞서 일반 시민들이 레지스탕스(저항)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 같은 촛불혁명을 꿈꾸는 반트럼프 시위 현황을 심층 진단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3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시청 앞 계단에서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할 독립 위원회 설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스앤젤레스=UPI연합뉴스
◆미국판 촛불시위

한국에서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전개된 주말 촛불시위는 최순실씨 국정농단 진상 규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책임자 처벌이라는 단일 테마로 진행됐다. 미국에서 연쇄적으로 열리고 있는 시위에서는 매번 이슈가 달라진다. 여성의 날 시위,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공항 시위, 이민자 없는 날 시위, 대통령 불인정의 날 시위, 여성 없는 날 시위, 노동절 시위,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커넥션 진상 규명 시위 등으로 초점이 달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시위는 모두 트럼프 대통령 또는 그의 정책을 거부하는 ‘반트럼프’ 시위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반트럼프 시위는 지난해 11월 8일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하는 순간에 잉태됐다고 뉴리퍼블릭 최신호가 지적했다. 트럼프는 총 득표 수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졌으나 선거인단 숫자에서 앞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또한 대선과 동시에 실시된 상·하원의원 및 주지사,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압승했다. 공화당은 현재 연방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국 50개 주 중에서 주지사 33명과 주의회 32곳을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사회 진로의 열쇠를 쥔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도 보수 5, 진보 4명으로 보수파가 우세하다.

현재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반트럼프 시위는 진보 진영의 분노와 서러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뉴리퍼블릭이 지적했다. 대선과 총선 등의 개표 결과를 밤새 지켜보던 시민들이 날이 밝자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의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미국은 지금 ‘시위 공화국’

미국의 민간단체인 ‘크라우드카운팅컨소시엄’(CCC)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와 참가자 숫자 등을 집계하고 있다. CCC에 따르면 지난 4월 한 달 동안 미국에서 950회의 거리시위, 행진, 연좌 데모 등이 벌어졌다. CCC는 4월 한 달 동안 이 같은 정치 집회 참가자가 63만7198∼118만1887명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 기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 늘어날수록 반트럼프 시위가 확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3월에 비해 4월에 시위 참가자가 62%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관은 반트럼프 시위가 증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갤럽이 5월 30일∼6월 1일 실시한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39%로 역대 최저 수준을 보였다.

한국에서 촛불집회에 맞서는 태극기집회가 있었듯이 미국에서도 트럼프 지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반트럼프 시위가 950회 열린 데 비해 트럼프 지지 시위는 22회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에서 촛불시위는 시종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미국의 반트럼프 시위에서도 폭력 사태나 주동자 구속 등의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CCC는 4월에 벌어진 주요 시위에서 구속자가 나오지 않은 비율이 98%에 달했다고 밝혔다.

◆레지스탕스 대 성조기 집회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의 이슈는 달라도 지향하는 목표는 같다.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 타도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제 트럼프 정부를 반대하는 시위가 주례 행사로 자리 잡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내 150개 이상 도시에서 3일(현지시간) ‘진실을 위한 행진’(March for Truth)이 벌어졌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위이다. 이 행진에는 야당의 주요 인사와 인기 연예인 등이 대거 참석했다. 이는 한국의 촛불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광경과 흡사하다. 특히 한국의 촛불시위처럼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워싱턴 시위에 참석한 샤론 솔로는 10살 딸과 함께 시위에 참가하면서 “이 나라는 내 딸이 살아야 할 곳”이라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태극기 집회처럼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성조기 집회’도 열리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파리 아닌 피츠버그 집회’가 3일 워싱턴 등에서 개최됐다. 이는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발표하면서 제기한 구호를 딴 것이다. 트럼프 지지 집회의 일부 참가자들은 성조기를 들거나 성조기의 상징색인 빨간색, 흰색, 푸른색 등 3색의 복장을 하고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