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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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밤, 한 줄기 빛처럼… 문학은 내 인생이자 내 집”

소설가 황석영 자전 ‘수인’ 출간
소설가 황석영(74)씨가 자전적 삶을 기술한 ‘수인’(전2권·문학동네)을 펴냈다. 유년기에서부터 문학청년 시절을 거쳐 민주화운동과 광주항쟁, 방북과 망명, 수감생활에 이르는 방대한 편력을 진솔하게 담아낸 노작이다. 현대사의 굵직한 변곡점들과 맥을 같이한 그의 자전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하면서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한번 손에 잡으면 놓기 힘든 가독성을 발휘한다. 

한국 현대사를 문학과 더불어 살아온 작가 황석영. 그는 “문학은 내 집이었고 떠나 있을 때도 언제나 잊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상윤 기자
그는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에 대한 의미를 담아 이 자전의 제목을 ‘수인(囚人)’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나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문학입니다. 결정적일 때마다 문학이라는 목표와 신념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냈을까 싶습니다. 베트남에서 전투를 벌이면서도 밤을 새워 기도했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좋은 글을 쓰겠다고. 오랜 망명과 감옥생활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더 이상 소설을 못 쓸 것이라고 걱정할 때도 노름꾼이 새벽 끗발을 기다리듯 오히려 평온했지요. 캄캄한 밤에도 먼 데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나를 끌고 온 문학은 나의 인생이었고 내 집이었습니다.”

이 자전은 방북 이후 투옥된 5년의 수감 생활을 현재형의 한 축으로 삼고 또 한편에서는 감옥 바깥 삶의 중요한 고비들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펼쳐내는 방식이다. 그는 진정한 자유가 도래하지 않은 한반도에서 살아왔다는 맥락에서 감옥 안이나 바깥이나 갇혀 있기는 마찬가지인 ‘수인’이었다는 시각이다.

황석영 작가가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설가온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자전(自傳) `수인`의 출간 기념 간담회를 열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하상윤 기자
황석영은 만주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어머니 등에 업혀 월남해 어린시절 6·25전쟁을 겪었으며 4·19의 격랑 속에서 친구를 잃었고 문학청년의 시절을 지나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나서 유신독재 치하에서 저항하다 5·18광주항쟁을 맞았고 그 진실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1989년 분단체제의 벽을 뚫고 방북을 결행한 뒤 4년의 망명을 거쳐 귀국 후 수감, 5년 동안 수인으로 살았다.

소설가란 모름지기 작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자전을 쓸 거라곤 상상하지 못하다가 연재 권유에 집필을 시작했지만 중도에 그만두었고, 3년 전에서야 본격적으로 다시 쓰기 시작해 출간했다. 6000매까지 썼다가 4000매로 축약했는데 기실 그동안 삶의 5분의 1 정도밖에 담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개인적 삶을 정리하는 의미도 있지만 동시대 사람과 같이 겪어온 것을 작가로서 정리하고 공유하면 뒤에 오는 사람들이 역사적·문학적인 자료로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출감 이후 세계 작가들과 교류하며 살아온 20년과 향후 남은 삶은 평자들이 따로 써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다 써놓고 보니 옆을 돌아보지 않고 한길로 화살처럼 달려오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한 달도 평온한 적이 없었습니다. 매번 일이 터지고 거기에 대응해온 인생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자신도 상처를 많이 입었지만 주변에 많은 상처를 주었을 겁니다. 많은 사랑을 받아왔는데 그동안 내 귀중한 벗이나 선후배들에게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지 성찰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라면 1985년 광주에서 집을 떠나기 직전으로 돌아가 ‘파가’(破家)의 사주를 바꾸고 싶습니다.”

그는 “망명 기간은 이후 내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고 세계시민이 되겠다는 포부를 갖게 한 하나의 학교였다”면서 “내 문제를 세계 사람들과 더불어 생각하고 세계의 문제를 내 것으로 생각하겠다는 단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계시민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그이지만 “북한은 타자가 아니라 ‘나’의 또 다른 면”이라면서 “남과 북의 평화를 주장하고 대화를 한다면서 서로 왜곡하고 비방하며 공격만 해서는 새로운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방북 당시 나의 기본적 입장이었고, 가급적 너그러운 시선으로 북을 바라보려고 애썼다”고 밝혔다.

그는 “4·19와 5·16을 겪었던 고등학생 소년이 탄핵을 겪는 과정까지, 돌아보니 대장부 한평생이 걸렸다”면서 “19세 소년에서 75세까지 한국 현대사는 평탄치 않았고 지금도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지 미래는 미지의 것으로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장부 한평생’을 돌아본 그는 “어쨌든 우리는 촛불 이후 새로운 출입구에 서 있다”면서 “글쓰기를 혹독하게 말렸던 어머니에게 이 자전을 바친다”고 맺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