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있는 스트레스 해소방을 찾은 손님이 야구방망이로 가전제품을 부수며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아래 사진은 유리접시를 벽을 향해 던지고 있는 모습. |
“일단 모든 걸 잊고 눈앞에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숴버리니까 속이 시원하네요.”
‘스트레스 해소방’이라 불리는 매장을 이용한 노모(27)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야구방망이, 쇠망치 등으로 각종 물건을 때려 부수며 스트레스를 푼다.
짜증을 주문하면 유리나 도자기 등의 세라믹 제품 10개가, 빡침 메뉴 이상은 세라믹과 더불어 가전제품이 제공된다. 보호복과 헬멧을 착용한 뒤 ‘연장’을 이용해 눈앞에 놓인 각종 제품을 사정없이 내리치며 타격감을 만끽하면 된다.
노씨는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다”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눈치보지 않고 때려 부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이지만 학교 시험, 취업난, 직장 생활 등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이색적인 체험을 하거나 꼭 필요한 것은 아닌 물건을 사는 등 돈을 쓰면서 해소하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서울 중구의 이모(29)씨는 과한(?) 외식비를 지출할 때가 가끔 있다. 평소엔 찾기 어려운 유명 음식점을 찾는 것이다.
이씨는 “취업이 어렵다보니 요즘 부쩍 앞날에 대한 걱정이 커질 때가 있다”며 “유명한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찾아가 제대로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모(20)씨도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시험기간이면 “치킨이나 피자 등 패스트푸드를 잔뜩 시켜 혼자 폭식하면서 기분을 푸는 편”이다.
‘탕진잼(물건을 사는 데 돈을 ‘소소하게’ 탕진한다는 의미를 담은 신조어)’도 비슷한 맥락의 소비 형태다. 굳이 살 필요는 없지만 기분 전환을 할 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물건을 사며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젊은층의 이같은 성향은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지난달 미혼남녀 44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응답자들은 기분을 전환하기 위한 활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동 구매’(16.6%)를 ‘맛집 탐방’(26.4%)에 이어 두번째로 꼽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이와 관련된 정보를 주고받는 주요 통로다. 이날을 기준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시발비용과 탕진잼이 언급된 횟수는 각각 7000건·1만6300건을 돌파했다.
연세대 이동귀 교수(심리학)는 “사소한 기호품을 사면서 ‘이 정도는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불황기에 여성이 립스틱을 구입하는 ‘립스틱 효과’와 유사하다”며 “정도가 지나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글·사진=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