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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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국민 간식’ 치킨

치킨이 ‘국민 간식’으로 등장한 역사는 길지 않다. 6·25전쟁 이후 들어온 미군이 크리스마스 때 칠면조 구이 파티를 하면서 즐기던 칠면조를 구할 수 없자 닭을 대신 사용하면서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1984년 치킨 대명사인 ‘KFC’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치킨문화에 호기심이 생겼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국민간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됐다고 한다.

닭과 치킨은 분명히 다르다. 치킨은 튀기거나 구운 것인 반면에 끓이거나 볶은 것은 닭요리다. 영화 ‘집으로’에서 7살 상우가 치킨이 먹고 싶어 손짓 발짓을 다해 할머니에게 설명했지만 상에 오른 것은 닭백숙이다. “치킨이 아니잖아. 물에 빠진 닭은 싫다”고 투정한다. 이처럼 닭과 치킨에 따라 세대가 나뉜다.

중장년층에겐 치킨 앞에 등장한 통닭에 관한 짠한 추억이 있다. 치킨은 배달해 먹는 것인 데 비해 통닭은 주로 아버지가 이른바 ‘영양센터’에서 직접 사오신 것에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 옛날, 아버지가 월급날 술에 취해 사오시던 노란 봉투에 담겨 있던 통닭 한 마리.” 이런 투의 문장은 가정의 달, 아버지를 주제로 한 백일장 행사에 빠지지 않은 단골 레퍼토리였다.

최근 치킨값이 올랐다. BBQ, 교촌치킨 등 치킨 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해 일부 제품은 세트당 2만원을 넘어 부담스럽다. 소비자들은 주문을 줄이면 되지만 가맹점의 불만은 심상치 않을 정도다. AI 의심사례가 신고된 이후 주문이 크게 줄었다. 게다가 정부가 현재 시간당 6470원인 최저 시급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인상할 방침이란 소식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전국의 치킨집은 3만6000곳. 정부 방침대로라면 상당수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알 만한 한 치킨업체는 본사가 부담해야 할 광고비를 가맹점주에 떠넘긴 ‘갑질’을 하다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 다른 업체는 회장의 여직원 성추행 혐의가 드러나 이들을 더 힘 빠지게 하고 있다. 비정규직 못지않게 챙겨야 할 계층이 이들 소상공인이다. ‘힘있다’는 국정기획위가 이들도 찾아 ‘치맥’ 간담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박태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