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처절한 작가정신이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이가염도 문화혁명시기를 비켜갈 수 없었다. 농촌으로 추방돼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그는 일흔의 나이가 돼서야 광풍의 시기가 지나 붓을 다시 들 수 있게 됐다. 병 난 발가락을 절단하고도 생애 마지막 10년을 산에 올라 사생에 매달렸다. 울림을 주는 산수화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84×131㎝) |
이가염은 긴 고통의 터널이라는 고독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에 대한 원망도 하지 않았고, 자기의 내면만을 고집스럽게 파고들어 장막을 치지도 않았다. 그곳에 교만과 아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리라.
정보홍수시대다. 미디어가 모든 시간을 장악해 버리는 소란스러운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세상에서 누군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한다면 고독만이 그 사람을 지탱해 줄 것이다.
고독이 병으로 흐르지 않는다면 고독은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이가염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산속에서 사생을 즐긴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분명한 것은 유화도 수묵화도 완성된 예술은 아니다. 더욱이 동양과 서양을 나누는 기준도 더 이상 불분명하다. 유일한 기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냐 없냐다. 이가염의 예술세계가 그렇다. 한국화단이 나아갈 방향을 이가염의 발자취에서 찾아 봄도 괜찮을 듯싶다. 젊은 작가들의 거침없는 도전을 기대해 본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