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헌혈자의 날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힘, 지금 당신의 헌혈입니다’를 주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헌혈자 250여명을 모시고 기념식이 진행됐다. 이날을 기념해 헌혈자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표창을 준비하면서, 헌혈자 한 분의 사연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 |
그의 사연을 보고 얼마 전 백혈병 환우회 소식지를 통해 본 희선씨의 사연이 떠올랐다. 항암치료와 골수이식을 이겨내고 현재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희선씨. 그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면서 매일 1팩(혈소판 250mL)에서 32팩까지 수혈을 받았다. 그가 이 어려운 치료를 이겨낼 수 있었던 저력은 ‘구세군 냄비를 보아도 내 피 같은 돈을 선뜻 꺼내기 어려운데, 얼굴도 모르는 나에게 그 많은 사람들이 진짜 뜨거운 피를 나눠 주었구나’하는 감사의 마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나 고마운 헌혈자들과 높은 헌혈률을 보유한 우리나라에서 왜 심심찮게 ‘혈액부족’이라는 기사가 나오는 걸까. 그 이유는 특정 연령대에만 헌혈을 의존하는 구조에 있다. 헌혈자의 대다수(73%)가 10~20대이기 때문에 이들이 헌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겨울방학이나 명절 연휴, 시험기간 등에 혈액이 일시적으로 부족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인구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암, 심장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 수혈을 받아야 할 환자 수는 늘고 있다. 혈액의 총 사용량 역시 증가하는 추세다. 이대로 중장년층의 헌혈(27%)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10~20대 헌혈이 10%만 감소해도 5년 내 혈액부족 사태가 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혈자들에 대한 감사함과 긍정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제2, 제3의 희선씨를 다시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는 혈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혈액 분야 전문가, 환우회, 관계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혈액사업 중장기 발전계획(2018∼2022년)’을 준비하고 있다. 헌혈자들이 더욱 대우받고, 쾌적한 환경에서 헌혈할 수 있도록 고민도 하고 있다. 국민들이 헌혈해 준 혈액을 꼭 필요한 곳에, 적정량을 쓰고 있는지 감시도 열심히 할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헌혈에는 소극적이면서 수혈량의 73%를 사용하는 30대 이상 어른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헌혈자들이 주삿바늘의 아픔을 겪으면서도 헌혈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아파보지도 않은 헌혈자들이 어찌 생사의 기로에서 가슴 찢는 이웃의 아픔을 이토록 헤아릴 수 있는 걸까. 헌혈이 주는 생명 나눔과 나눔 후의 기쁨. 이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삶과 죽음을 오가는 절박한 이웃에게 삶이라는 희망을 선물할 수 있는 최고의 기부가 아닐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숨은 히어로, 헌혈자들. 이제 우리 모두가 그 주인공이 돼 보는 것은 어떨까.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