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36·여)씨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육아 휴직 중인 그는 산후 우울증에 육아 스트레스까지 겹쳐 갓 돌을 지난 아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잦아졌다. 요즘 흔히 말하는 ‘분노조절장애’는 아닌가 싶어지면 아이에게 상처 주는 ‘못된 엄마’가 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직장인 최모(33)씨는 반말과 폭언을 일삼는 직장 상사 탓에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상사에게 직접 항의는 못하고 애꿎은 후배를 상대로 화풀이를 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자책감만 깊어진다. 최씨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나 최씨처럼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상에서 겪는 사소한 불편, 불만에도 순간적으로 폭발해 살인사건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욱하는 사회’와 다름없다.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윤대현 교수(정신건강의학)는 “분노조절장애는 성격 장애 등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화를 낸다든지 분노 조절이 잘 안 되는 건 공감능력 결여와 연관이 있다”며 “공감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뇌가 지쳐 부정적 감정이 많이 생기고 조절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개인주의가 심하면 공감능력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이 떨어져 과격한 행동이 나올 수 있다”며 “분노 조절이 안 되는 게 심하다고 판단되면 전문의와 적극적으로 상담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전체 범죄자 177만1390명 중 우발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경우가 25만6669명(14.5%)으로 가장 많았다. 특히 상해·폭행 등 폭력 범죄자 10명 중 4명 가량(38.6%)이 우발적 범죄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분노조절장애를 범죄 유발 요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대 이수정 일반대학원 교수(범죄심리학)는 “폭력 범죄치고 분노와 연관되지 않은 게 없는데, 요즘엔 분노조절장애란 말을 너무 쉽게 쓰고 분노를 느껴 범죄를 저지르는 걸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여기는 기류까지 있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이어 “범행 동기가 납득이 안 되고 화풀이성으로 아무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벌인 범죄는 처벌 수위를 높여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분노 조절에 실패해 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좀 다른 각도에서 봐야 한다”며 “정신 병리(분노조절장애)로만 보면 면죄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