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칭기스 칸 성공의 비결 중 하나로 종교에 대한 포용을 꼽는다. 칭기스 칸은 종교적 열기와 갈등이 치열하던 시대에 살았다. 신앙의 자유와 광신자들의 행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가는 숙제였다. 서로 자신만이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고 주장하는 종교들이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도 인류가 직면한 매우 중요한 문제다.
저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내건 종교적 관용의 사례를 칭기스 칸 사상에서 발견한다. 저자는 “미국 헌법 수정 1조는 ‘의회는 종교의 수립과 관련된 법률이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고 적혀있다”면서 “종교와 사상의 극단주의로 혼란을 겪는 현대 시대에 칭기스 칸의 열린 사상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했다.
칭기스 칸은 사람의 말보다는 행동을 더 중시했다. 올바른 행동을 이끌어내는 밑바탕은 종교적 가르침이라고 확신했다. 이는 나의 종교가 중요하다면 너의 종교도 중요하다는 깨달음으로 확대되었고, 제국 형성 과정에서 종교적 관용을 도입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칭기스 칸의 종교적 근원을 추적한다. 부족에게서 추방된 그의 가족은 부르칸 칼둔 산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연명한다. 이때부터 칭기스 칸은 산의 ‘영기’가 자신을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몽골 부족을 통합하고 몽골국의 최고 통치자가 된 그는 이런 성공이 결국 하늘의 뜻이라고 확신한다.
이 신념은 올바른 종교의 길을 가지 않는 모든 나라를 정복하여 하늘의 뜻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한다. 종교적 관용 정책의 출발이었다. 종교적 포용은 무역과 함께 몽골 제국을 이루는 두 기둥이 되었다.
칭기스 칸의 그릇이 어떤지를 알 수 있는 사례 한 토막이다.
격렬한 전투에서 적군 한 명이 칭기즈 칸이 탄 말의 목을 화살로 맞혀 넘어뜨렸다. 그래도 칭기스 칸은 살아남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포로로 잡힌 적군 병사들에게 물었다. “내 황갈색 말의 목뼈를 부러뜨린 화살을 쏜 자가 누구냐?” 한 병사가 나서 자기가 쏘았다고 자백했다. 그는 자신이 처형돼 들판에 버려질 것으로 예상하고 체념했다.
칭기스 칸은 오히려 그를 용감한 전사라고 칭찬하며 심복으로 삼았다. 패배한 전사들은 대체로 자신의 행적을 숨기고 입을 다문다. 그런데 이 병사는 용감하게 진실을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동료로 삼을 만한 사람이다”고 말한 칭기스 칸은 말의 목을 부러뜨린 그 화살 이름을 따 그를 ‘제베’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내 곁을 지켜 달라”라고 청했다. 새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긴 제베는 나중에 위대한 몽골 장수가 되었다. 저자는 칭기스 칸은 종교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풀이한다.
정승욱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