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가 하나라 임금의 명을 받들어 희씨와 화씨를 정벌할 때 일이다. 윤후가 군사들에게 말했다. 성인께서는 모훈을 남겨 나라를 보존했고, 선왕께서는 하늘의 깨우침을 따르니 백관들도 덕을 닦아 사직을 튼튼히 했다. 희씨와 화씨만이 덕을 전복하고 술과 음란에 빠져 관직을 어지럽혔다. 서열을 파괴해 천기를 혼란스럽게 하니 해와 달도 음력 초하루의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늘의 계시에도 혼미해 선왕의 법을 어겼다. 이에 천자의 명령을 경건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곤륜산에 불이 나면 옥과 돌이 함께 탄다. 사나운 불길보다 격렬한 것이 임금이 덕을 놓치는 것이다. 우두머리는 죽이고 협박에 못 이겨 복종한 이들은 벌하지 않을 것이다. 오래 물들어 더러워진 풍속을 씻어내 모두 더불어 새롭게 하리라. <서경 각색>
보수 재건이 힘에 부치다. 거친 혓바닥에 들썩이던 지지율이 한자릿수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왕왕 거론되던 흡수론도 자취를 감췄다. 산술적으로 더해봐야 20%도 안 되기에 그렇다. 합쳐서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보수정당의 명맥이 끊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도광양회를 새겨야 한다.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길러야 한다. 삼십육계의 격안관화도 교훈이 되겠다. 적을 지켜보다가 자멸하기를 기다리는 계책이다. 입과 부리를 물고 서로 놓지 않는 조개와 황새의 사례로 진의 위협을 깨달은 조는 연을 공격하지 않았다. 기다렸다가 어부지리를 취하려 했던 진의 입장에서는 아쉬웠겠다. 적이 화를 당할 때까지 관망하다가 기회를 잡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오래 기다리려면 자력자강해야 한다. 양측이 상당량의 지지율을 회복한 뒤 합치거나, 자연도태된 상대의 세력을 흡수하는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뒤탈이 없으려면 현재의 주축들이 빠져야 한다. 그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 당분간은 각방이 필연이다.
진 싸움을 복기해야 실마리를 줍는다. 결정타는 국정농단이었다. 방조했거나 방관했거나 동조하거나 동참했다는 이유로 적폐라는 딱지가 붙었다. 분전했으나 절반의 복원에 그쳤다. 마음을 완전히 열지 못한 이유와 더 닫혀버린 이유는 두 가지로 본다. 인물과 가치의 부재다. 의식은 함께 하되 박근혜정부에 부채가 없는 새 인물이 간판주자로 나섰다면 덜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간판을 바꿔도 뻔한 메뉴다. 숟가락이 가지 않는 건 맛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 측면에서는 더 좋은 분석거리들이 있다. 정주영주의와 박정희주의의 실패다. 성장우선주의를 기치로 다시 찾은 10여년 동안 경제는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정주영의 후예가 시원찮아 박정희의 후예를 뽑아도 똑같았다. 더이상 과거의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깨닫게 됐다. 권위주의와 고속성장 시대에 대한 향수는 신기루로 끝났다. 실패한 가치다. 한자릿수에 머무는 건 더 나은 가치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술을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창당이다. 쇄신으로는 한계가 있다. 천막당사는 이미 쓴 카드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고 언젠가는 실수를 하고 실패를 겪는 법이다. 정권도 마찬가지다. 배가 기울자 정권도 기울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지지율은 독단과 아집만 키웠다. 한줌도 안되는 사람으로 나라살림을 할 수 없다는 충신의 말도 들리지 않게 했다.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는 보겠지만 떨어질 때의 충격은 더 크다. 추경이든 정부조직법이든 인사든 해달라는데로 해주는게 맞다는 소리는 옳은 말이다. 혼내는 이가 없으니 잘하는 줄 알겠다. 견제하는 이가 없으니 막나가도 되겠다고 생각하겠다. 터닝포인트는 그런 때에 온다. 실수가 잦아지고 실패를 겪으면 내리막이다. 낙수를 받아먹으려면 국민의 신망을 담을 큰 그릇이 돼야 한다. 기성정당의 탈로는 한계가 있다. 미운털이 박혔거나 미운털을 못 뽑고 있거나 몇 안되는 고운털 마저 뽑히게 될 처지이기에 그렇다.
새부대에 담으려면 먼저 새술을 빚어야겠다. 새로운 인물이다. 기존 보수정당에서 목소리를 냈던 사람으로는 곤란하다. 실패에 대한 직간접적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 상당수의 지지율을 받아봤거나 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단기필마로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건이 갖춰지면 당을 꾸려 바람을 일으킨다. 신당이다. 신당이 순풍에 돛을 달면 기회가 생긴다. 보수 재건의 안식처가 마련되는 것이다. 엿보다가 신당의 깃발 아래 헤쳐모인다. 손실 없이 온전히 보수정당을 복원하는 길이다. 우선순위로 황교안 전 총리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꼽아본다. 둘다 정당의 실패와는 무관하고 보수의 대안으로 상당한 지지율을 얻었었다. 황 전 총리는 스스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반 전 총장은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 보인다. 둘 중에 하나가 나선다면 반 전 총장보다는 황 전 총리다. 보수진영에 더 나은 대안이 있을 수도 있다. 자기들끼리 잘해보려고 할 수도 있다. 새술을 빚을지 헌술만 들이키다가 마지막 기회마저 잃을지는 곧 결정나겠다.
하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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