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선거 영향력’을 분석하고 ‘내년(2012년) 총선·대선(19대 국회의원 선거·18대 대통령 선거)을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역량을 총동원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장악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이명박정부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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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2011년 11월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SNS의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보고서. |
검찰과 법원은 국정원이 18대 대선을 앞두고 독자적으로 트위터 및 댓글 조작 활동을 했다고 판단했으나, 청와대 핵심부가 이런 활동에 연루된 구체적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이 최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재조사 방침을 밝힘에 따라 ‘SNS 장악 보고서’ 작성 및 보고 진상이 규명될지 주목된다.
9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청와대 접수 문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1년 11월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실에 보고했다. 이 보고서를 당시 김효재 정무수석비서관이 직접 검토한 사실도 확인됐다.
보고서에는 국정원 특유의 복사방지 워터마크 표지가 있으며, 이를 유출한 인물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을 통해 이 보고서가 국정원에서 청와대로 보고된 사실도 확인됐다.
보고서는 “SNS가 ‘후보선택 판단 창구’로서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데, 여당의 ‘절대 불리’ 여건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좌파 절대 우위인 트위터의 빈틈을 파고들어 SNS 인프라를 구축하고, 좌파 점유율이 양호한 페이스북을 집중 공략해 여론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정원은 A4용지 5장에 △10·26 선거 결과 분석 △정부·여당의 SNS 대응 실태 △정부·범여권의 SNS 장악을 위한 단·중장기 대책을 담았다. 2012년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재판이 진행됐으나 국정원 심리전단팀 댓글 활동의 ‘종합기획안’ 격인 이 보고서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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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전 국정원장 |
국정원 어느 조직이 이 보고서를 작성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윗선’의 정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인지 여부, 이 대통령과 집권 여당 지도부에 보고됐는지 여부 등도 규명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보고서 내용 중 상당부분이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원 전 원장의 개입 정황이 짙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과 관련해 2015년 7월 대법원에서 증거 능력 부족으로 파기 환송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국정원 문건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김효재 전 수석은 “옛날 일을 왜 이제 와서 묻느냐”면서 전화를 끊었다.
특별취재팀=조현일·박현준·김민순 기자 con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