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대북제재 환경 속에서 전향적인 통일정책을 수립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 긴장관계를 완화시켜 나가면서 중장기적으로 통일을 논의하는, 서로 눈높이를 맞춰가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정책 추진이 가능한 부분은 남북경협사업일 것이다. 새 정부의 남북경협사업은 기존에 추진된 것과 달리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출발할 필요가 있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물류연구본부장 |
과연 어떤 남북경협 사업이 앞서 제시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답은 항상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 기존에 추진되었던 나진항 협력사업이 위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하겠다. 나진항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진 항만이다. 일본이 만주국을 세우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진출할 때 물류거점으로 삼았던 요충지로 대형 항만 접안이 가능한 가성비가 좋은 항만이다. 특히 나진항의 진면목은 자연조건보다 지경학적 입지에 있다. 나진항은 북·중·러 국경에 인접해 있고 중국과 약 52㎞, 러시아와 60㎞ 이내에서 철도와 도로 접근이 가능한 곳이다. 아시아 철도 연결의 걸림돌인 궤간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국제복합물류거점이기도 하다. 중국과 표준궤, 러시아와는 광궤의 철로가 복합형태로 항만과 연결되어 있다. 이 같은 입지는 중국 동북 3성 중에서 대양으로 진출할 항만시설이 전혀 없는 헤이룽장성과 지린성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나진항 개발사업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나진항 3부두 한·러 공동운영 사업은 투자비가 그렇게 크게 들지 않은 소규모 사업이다. 그리고 한·러 공동으로 추진되는 다자간 사업으로 정치적 리스크 축소가 가능하다. 나진항은 북한이 추진하는 나진·선봉경제특구의 핵심 물류인프라이다. 다시 말해 나진항 운영사업 참여는 나진·선봉경제특구의 활성화와 연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북한의 관심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사업은 항만운영에서 시작해서 주변 항만의 확장, 항만배후단지인 나진·선봉경제특구 개발사업 나아가서는 북·중, 북·러 간 내륙물류거점 확보, 철도연결 사업 등 지속적인 확장이 가능한 사업이다. 또한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해 이 지역 물류사업은 수익성 제고가 충분하다고 하겠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새 정부의 통일정책에서 남북경협사업은 작지만 우리 민족의 통일을 앞당기는 운명의 길이다. 주변의 어려운 환경에도 정책입안자들의 현명한 판단 아래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어야 할 것이다.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항만물류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