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6시간 물에 불리고 15분간 삶는다. 콩을 삶을 때는 6과 15라는 숫자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덜 삶기면 비리고 더 오래 삶기면 메주 냄새가 난다. 잘 삶긴 콩은 껍질을 까 믹스에 넣어 물과 함께 간다. 쫀득하게 삶긴 국수 위에 냉장 보관한 콩국물을 붓는다. 그 위에 고명으로 어슷 썬 토마토 몇 조각, 채 썬 오이, 그리고 검정깨를 솔솔솔 뿌려주면 끝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
영국동화 ‘잭과 콩나무’에서 엄마는 잭에게 암소를 시장에 가서 팔아 먹을 것을 구해오라 한다. 잭은 신비로운 사내를 만나 암소를 콩 3개와 교환한다. 화가 난 엄마는 콩을 집 밖 정원에 던져버리고 만다. 다음 날 아침에 그 콩은 커다랗게 자라 구름 위로까지 뻗어간다. 잭은 콩나무를 타고 올라가 거인의 성에 당도한다. 거인이 자고 있을 때 몰래 황금알을 낳는 닭, 금화와 은화, 말하는 하프를 훔쳐 내려와 부자가 된다.
작고 만만해 보이는 콩알 하나 안에 담긴 수많은 비밀과 새로운 세계, 그것은 하나의 꿈이며 하나의 소용돌이다. 하나의 폭풍이다. 콩알만 한 꿈이었는데 그냥 무심히 마당에 던져버렸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거대한 나무가 됐다. 우리의 꿈은 콩처럼 우리도 모르게 자라 하늘로 뻗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콩의 생명력은 질기다. 절실하다. 생존을 위한 생명력이고 성실한 생명력이다. 강낭콩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본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 하나가 나를 쳐다본다. 엄마에게 전화했더니 그런다. “야야, 여름철엔 콩국수가 최곤겨.”
궁핍기에 조선민족을 지켜왔던 콩. 툭 마당에 던졌는데 구름 위까지 올라갔던 콩나무. 맑은 듯 텁텁하게 입 안에서 공굴리다 넘어가는 콩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켜고 싶다. 콩국물의 눈물과 콩국물의 생명력이 한가득 몸속으로 스며들 것 같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