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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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생명의 그물을 되살리기 위하여

침팬지 대모 구달, 희망의 가능성 역설 / 인간 위해서라도 활력 있는 야생 필요
“자연의 회복력과 불굴의 정신이 있으니 아직 희망은 있다.” 스물여섯 살 젊은 여성으로서는 위험하기도 했을 탄자니아 열대우림으로 가 침팬지 연구에 평생을 바친 세계적인 환경 운동가이자 침팬지의 대모 제인 구달의 말이다. 그녀가 동료들과 함께 쓴 ‘희망의 자연’은 세계 도처에서 멸종 위기에 놓인 동식물을 되살리려 애쓴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사람의 간절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요한가. 아니, 왜 그런 사람들의 절박한 노력이 요구되는가.

구달 박사에 따르면 지구에서 동식물은 늘 생존의 위협을 받았는데 점점 그 위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성장, 미래를 생각지 않는 생활방식, 절박한 빈곤, 줄어드는 수자원, 대기업의 탐욕, 지구 기후 변화 등을 비롯한 이 모든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불침번을 서지 않는 한 지금껏 이루어 온 모든 성과를 순식간에 무로 돌리고 말리라.”

그런 위협으로부터 멸종 동식물을 구하고자 목숨을 걸고 불침번을 선 사람의 이야기, 지구의 상처를 치유하고 생물다양성의 가치와 공존의 윤리를 실천하고자 했던 사람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통해 구달은 여전히 희망의 가능성을 역설한다. 알바트로스의 알들을 보살피기 위해 목숨 걸고 절해고도의 바위절벽을 기어오르는 조류학자가 있고, 독극물에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모이를 독수리에게 주기 위해 네팔 오지에서 급식소를 운영하는 젊은이가 있고, 벌목회사를 설득해 원서식지를 복원하는 현장 생물학자가 있는 한, 아직 희망이 있다는 얘기다.

캘리포니아콘도르도 멸종 위기에 처했었다. 한때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에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서해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서식했던 북미지역에서 가장 큰 새였다. 그런데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어 1974년에는 두 마리만 관찰됐다. 1980년부터 이 독수리의 멸종을 막기 위한 번식 노력을 기울인다. 마지막 남은 캘리포니아콘도르를 포획해 번식 센터에서 산란과 부화를 관리하고, 일정하게 자라면 야생으로 방생하고, 그 이후 야생에의 적응과정까지 추적하면서 관리했다. 야생에서는 주로 인간이 버린 쓰레기나 독성물질이 문제였다. 독수리들은 ‘병뚜껑과 딱딱한 작은 플라스틱 조각, 유리 조각’ 같은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먹고 탈이 났고,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번식팀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내어 멸종 위기에서 구해냈고, 그 결과 그랜드캐니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캘리포니아콘도르가 비상하면서 내는 천상의 음악을 듣게 됐다고 한다.

물론 멸종 위기의 동식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당장 위험과 곤란에 처한 인간도 많은데, 동식물을 위해 그런 돈과 힘을 들여야 하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을 건강하게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생물종으로 활력 있는 야생이 필요하다고 구달은 말한다. 관련하여 그녀가 인용한 워싱턴주에서 피그미토끼를 구하려 애쓰는 운동가 로드 세일러의 말이 주목된다. “만약 우리가 무지나 탐욕 때문에 멸종을 초래한다면, 각각의 멸종위기종과 고유한 군락이 매번 사라질 때마다, 우리 세계는 그만큼 다양성을 잃고, 아름다움과 신비로움도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해양과 초지, 숲들은 침묵으로 메아리칠 테고 인간의 마음은 알 수 없는 공허감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그때 가면 너무 늦지요.”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