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사용한 대장군전이 정유재란 7주갑(420년)을 맞아 국내에서 처음 공개됐다. 27일 국립진주박물관은 최근 개막한 특별전 ‘정유재란 1597’에서 대장군전을 전시한다고 밝혔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사용했던 ‘대장군전’(大將軍箭). 국내에는 임진왜란 때의 대장군전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
이번에 공개된 대장군전은 왜장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1542∼1600)가 가져갔던 유물이다. 1966년 10월 일본 규슈 사가(佐賀)현 가라쓰(唐津)성 천수각 개관 당시 일반에 처음 공개됐으나, 이후에는 수장고에 들어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다.
대장군전의 몸통 길이는 182㎝, 최대 지름 9.4㎝, 무게 10.6㎏이다. 머리 쪽에 박았던 철촉은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철촉이 보통 10㎝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길이는 192㎝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질은 우리나라 남해안과 제주도 등지에서 자라는 가시나무다.
몸통의 중간에는 ‘가리포 상 김등 조’(加里浦 上 金等 造)라는 글씨가 해서체로 적혀 있다. 가리포는 전남 완도에 설치됐던 수군 첨절제사진(僉節制使鎭)이 있던 장소로, 이곳의 장인인 김씨 등이 만들어 진상한 것으로 보인다.
대장군전의 몸통 중간에는 ‘가리포 상 김등 조’(加里浦 上 金等 造)라는 글씨가 해서체로 적혀 있다. 이는 전남 완도에서 김씨 장인이 만들어 진상한 것을 뜻한다. |
조선시대에는 천자문 순서에 따라 화포의 이름을 붙였다. 이 가운데 가장 큰 천자총통에 쓰는 화살을 대장군전, 지자총통에 사용하는 화살은 장군전이라고 불렀다. 김일환 순천향대 인문학진흥원 연구교수는 “19세기 편찬된 ‘융원필비’ 등 조선 후기 군사기술서적에 기록된 총통전의 길이나 지름을 고려하면, 대장군전인지 장군전인지 분명하지 않다”면서도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전선이나 각종 무기체계가 대형화되는 것을 고려하면 대장군전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물관 측은 구키 요시타카의 후손인 구키 다카쿠니(九鬼隆訓)씨의 협조로 전시가 성사됐다고 전했다. 히사노 데쓰야 일본 나고야성박물관 학예원은 “구키 가문의 ‘가전기록’에 의하면 대장군전은 1593년 6월 부산해전에서 획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하지만 이 시기 부산에서 대규모 해전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 입수 시기와 장소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대장군전 외에도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겪은 뒤 쓴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 등 정유재란 관련 문화재 150여 점이 출품된다. 전시는 정유재란 당시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전쟁의 전모를 조명한다.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겪은 뒤 쓴 ‘징비록’(懲毖錄·국보 제132호). |
1부 ‘정유재란 이전 강화협상과 조선의 대응’에서는 1593년 명과 일본 간의 강화협상이 시작된 때부터 결렬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2부 ‘전쟁의 재개와 일본군의 공세’에서는 정유재란 초기 왜군이 전라도와 충청도를 공략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이어 3부 ‘조명연합군의 반격과 주요 전투’는 조선 수군의 활약과 정유재란이 끝날 때까지의 전황을 보여주고, 4부 ‘전쟁의 기억-사람들’과 5부 ‘종전 이후 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에서는 정유재란이 남긴 유산과 전쟁 이후의 변화 양상을 살핀다.
국립진주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가 정유재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16세기 조선에서 일어난 동아시아 국제전쟁이 갖는 현재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