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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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청정국’ 지위 되찾자] 3명 중 1명 다시 마약에…중독 치료 ‘약손’ 급선무

⑤ 재범률 높은 마약류사범 / 재복역률 42%… 절도·강도보다 높아 / 교정시설 수감 등 처벌만으로는 한계 / 선진국선 구속보다 치료 전제로 집유 / 자가 치료 시설 늘려 수요차단 ‘올인’ / 정부 무관심에 치료비 지원 예산 축소 / 홍보예산 더 많아 본사업 압도하기도 / 민간병원 예산·인력 등 지원도 절실
지난 21∼23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NA(Narcotics Anonymous·약물중독자 자조모임) 컨벤션에 1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전방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스크린으로 쏠렸다.

36부터 1까지 숫자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다시 11부터 1로, 29부터 1로 늘었다 줄기를 반복했다. 숫자가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사람들을 향해 나머지 사람들이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스크린의 숫자는 마약을 끊은 지 36년이 된 사람부터 1년 된 사람, 11개월부터 1개월 된 사람, 29일부터 1일 된 사람 등을 의미했다.

이날 대회는 마약 등 약물 중독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꾸린 NA 중 일본 내 최대 규모 행사였다. 마약류 중독과 인생 파탄을 오가며 사회로부터 범죄자의 낙인을 찍힌 채 고통받던 이들의 돌파구인 셈이다.

선진국에서는 이처럼 마약류 중독에서 탈피할 체계를 여러 겹 갖추고 있다. 마약류사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통해 공급을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독, 즉 재범의 우려가 크다는 특징을 감안해 수요를 떨어뜨리도록 재활·치료에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또한 수요 차단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실제 정부 차원의 대응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끊기 힘든 악순환, 마약류 중독


마약류 중독을 끊기는 쉽지 않다. 30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0년대 들어 마약류사범의 재범률은 36∼40%에 달한다. 마약류사범 3명 중 1명은 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뜻이다. 2011년에 교정시설을 출소한 마약류사범의 재복역률을 살펴봐도 마찬가지이다. 마약류사범의 재복역률은 42.3%로 절도(40.5%)나 강도(24.2%), 폭행(23.1%) 등 다른 유형의 범죄를 모두 앞선다. 이는 마약류 중독에서 탈출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과 동시에 처벌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수십 년 전부터 이 한계를 실감한 선진국에서는 교정시설 수감보다 치료명령, 적발되지 않더라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단체를 늘리고 지원해 수요 차단에 힘썼다. 마약류사범에 대해 형량을 부여할 때에도 구속 위주가 아니라 치료를 전제로 한 집행유예를 통해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마약류사범에 대해 강력한 단속과 처벌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2015년 이후 마약류사범이 1만명을 넘어섰고,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마약류의 유통·보급망이 급증하면서 단속·처벌 모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관리법)’에 따른 처벌 기준을 살펴보면 매매와 조제, 투약 등에 대한 형량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판매나 조제사범은 한 명으로 인한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에 처벌을 강화해야 하지만 본인에 한정되는 투약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 위주를 탈피해 치료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치료하고 싶어도 정부 지원 미흡


정부는 마약류관리법과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 규정에 근거해 마약류 중독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치료보호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22곳의 의료기관(국립 5·민간 17곳)을 지정하고 치료비를 100%(국비 50%·지방비 50%) 지원해 환자의 부담은 없다. 하지만 정부의 무관심 속에 예산이 축소된 탓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치료보호사업 실적은 2007년 410명에 달했지만 2012년 28명까지 떨어졌다가 지난해 252명으로 다시 늘었다. 2015년 기준 투약사범이 6000여명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미약한 수치다.

인원만 보면 사업이 호조를 띤다고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2014년 6500만원에서 지난해 6000만원으로 줄었다. 이는 입원치료에 국한됐던 것에서 최근 통원치료의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예산 탓에 많은 재활·치료 수요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역 정신의료기관과 유흥업소, 보호관찰소 등을 대상으로 한 치료보호사업의 홍보예산은 최근 수년간 1억원으로 고정돼 있다. 홍보예산이 본 사업을 압도하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다.

복지부는 국립 지정병원 5곳에 대해 치료보호사업을 위한 자체 예산을 편성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예산이 편성된 곳은 국립부곡병원 1곳에 불과하다. 부곡병원은 국내 지정병원 22곳의 전체 병상 330개 중 200개를 확보하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마약류 중독자의 재활·치료 확대를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매칭사업’의 특성상 지자체가 아무리 예산을 편성한다 해도 중앙정부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치료보호사업 지정병원의 한 관계자는 “예산이나 관련 인원 등 정부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에 민간병원에서는 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