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한 인터넷 방송의 진행자가 화면을 통해 대리육성 사이트를 광고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
“24시간 대리육성 · 빠르고 간편한 대리결제”
지난 1일 한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이하 BJ)가 내보내는 방송의 화면에는 대리육성과 대리결제를 광고하는 배너가 번갈아 노출됐다. 이 BJ는 게임을 하다 멈추고 “대리육성은 OOO, 대리결제는 XXX”라며 광고를 읽기까지 했다.
같은 게임을 방송하는 다른 BJ들 중에서도 ‘대리육성’과 ‘대리결제’ 광고를 하는 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대리결제’는 업체가 고객 아이디로 게임머니 결제를 해주는 서비스다. 신용카드 결제한도에 구애받지 않고, 카드 고지서에도 관련 내역이 표시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고액의 게임머니를 결제하려는 게이머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대리육성’은 업체가 고객의 게임 아이디로 대신 캐릭터를 키워주는 서비스다. 게임에서 높은 등급으로 올라가고 싶은 게이머들의 욕구를 이용한 서비스로, 관련 업체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24시간’, ‘베테랑’ 등의 문구를 내걸고 고객을 모으고 있다.
인터넷 개인방송에 대리결제 광고가 올라와 있다. 출처=유튜브 |
◆게임 아이디·비번을 맡기는 대리서비스의 위험성
이들 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게이머와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들 업체가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들 업체는 대부분 메신저나 소규모 사이트를 통해 운영되고 있었다. 해당 사이트에는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생길 시 보상에 대한 규정이나 결제 시 주의사항조차 안내되고 있지 않았다. 몇몇 업체가 거래 종료 후 암호를 변경하라고 공지하고 있었으나 권고에 그칠 뿐이었다.
이처럼 믿을만한 대리 서비스인지 ‘안정성’조차 제대로 인증되지 않았으나 BJ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게이머 시청자를 상대로 광고하고 있었다.
한 인터넷 방송의 플랫폼 관계자는 “제재할 근거가 없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BJ가 후원(광고)업체를 자체 모집하고 있다”며 “불법적인 상품이나 사이트를 광고하는 BJ를 상대로는 따로 규제하고 있으나 자체 파악해보니 대리 사이트는 불법이 아니라 막을 근거가 없다”고 전했다.
지난달 한 대리 결제 사이트는 고객의 돈을 받아 잠적했다. 사진은 관련 피해자와 대리업체가 대화를 나눈 '카카오톡' 화면.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
불법으로 규정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리 사이트의 위험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7일 한 유명 BJ는 자신이 광고하던 대리결제 사이트가 사용자에게 돈을 받아 잠적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는 공지 글을 통해 “20~30명이 피해를 봤으며 총 피해금액은 8000만원에서 1억원 정도”라고 전했다.
앞서 해당 대리결제 업체는 "인기게임 '리니지M'의 아이템에 대한 모바일 결제를 5~15% 할인해 준다"며 게이머들의 대량결제를 유도한 뒤 돈을 가지고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해당 사이트는 중국에 서버를 두고 있었고, 사업자 등록번호도 도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돈과 함께 전달된 게이머의 개인정보는 언제 어디로 유출될지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후 리니지M의 제작사 엔씨소프트는 공지사항을 띄워 “최근 대리결제·육성에 대한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띄웠다.
엔씨소프트 측은 “어떠한 경우에도 타인에게 계정과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말아 달라”고 전했다. 이어 “계정공유 중 발생한 약관 위반행위의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고 이에 따라 계정에 제제가 적용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이 공지에 대해 “직접적인 제재 방안은 아니지만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안내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리결제와 대리육성 등 타인이 계정에 접속하는 행위는 게임 내에서 금지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하는 법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막는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지난달 16일 엔씨소프트가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의 홈페이지에 계정공유 피해에 대해 올린 공지 글. 출처=엔씨소프트 |
◆타인의 게임 계정 이용 법적인 문제는 없나
게임물관리위원회도 대리 사이트에 대해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게임위 관계자는 “본인의 동의하에 타인이 게임 계정에 로그인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며 “개인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나 현재로선 규제하는 법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지난 6월 이동섭 국민의당 의원은 ‘대리 게임’을 금지하는 내용의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의원은 “최근 제3자에게 자신의 개인정보와 계정정보를 공유하는 방법을 통해 부적절한 게임 결과물을 획득하고 있는 사례가 급증했다”며 “이들로 인해 게임사와 이용자들이 공정한 경쟁,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받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 법안이 통과되면 ‘대리 게임’으로 게임물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거나 이를 알선한 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지게 된다.
법무법인 '유스트'의 이인환 변호사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공유했더라도 업체가 의뢰인이 지시한 범위를 벗어난 행동을 한다면 형사법상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며 "값을 지급불했는데도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다면 민사상 채무 불이행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