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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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영화로 보는 책읽기의 매력

휴가 떠나는 가방에 숙제처럼 미뤄 놓았던 책을 슬그머니 집어넣으면서 이번에는 꼭 다 읽어야지 다짐해 본 적이 있는가. 가볍게 휴가만 다녀오지 않고 시간 날 때 책을 읽어야지 하는 마음은 왜 드는 걸까. 책읽기는 자신을 성찰하며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며, 보다 근원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실태 조사(2015년)에 따르면 “독서자만을 대상으로 한 연간 독서량은 평균 14권으로 2013년 12.9권보다 증가했고, 전체 독서인구는 줄었지만 독서자층을 중심으로 독서량은 2년 전 대비 더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각박한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책읽기와 차단된 일에 많은 시간을 빼앗길수록 독서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지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책읽기에 대한 근원적인 욕망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2009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케이트 윈즐릿에게 안긴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감독 스티븐 돌드리)의 한나는 다른 사람이 책 읽어주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 호메로스의 ‘율리시스’나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자’ 등을 읽어주는 15세 소년 마이클(레이프 파인스)과 사랑을 나누기까지 한다. 책 읽는 것을 듣기 위해서다. 히틀러시대 유태인 감시원이 된 그녀는 감금됐던 유태인들을 한 명씩 불러 책읽기를 시키기도 한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녀는 문맹이다. 그녀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밝히기를 죽기보다 꺼려서 최악의 전범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게 된다.

성인이 된 마이클은 한나에게 읽어주었던 책 내용을 직접 녹음해 녹음기와 함께 한나에게 보낸다. 그가 책을 낭독하며 녹음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함께 그 책 속으로 빠져든다. 한나는 감옥에서 빌린 책을 펼쳐 놓고 녹음테이프를 마르고 닳도록 들으며 문맹을 벗어나 마이클에게 편지를 쓰게 된다.

우리는 왜 책읽기를 하고 영화를 보려 하는가.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구분한 인간 욕구의 5단계 중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 욕구는 1단계인 생리적 욕구만큼 인간에게 강렬한지도 모른다. 자아실현 욕구에 가까운 책읽기나 영화보기는 매슬로가 말한 인간 욕구가 1단계부터 단계적으로 충족되고 싶어진다는 것의 반론이 되는 것은 아닐까.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