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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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공공자전거 음주운전 ‘공포의 따릉이’

막차 끊긴 심야시간 귀가 때 활용/ 행인 배려 없이 질주… 사고 위험/ 처벌 규정 마련 안돼 권고 그쳐/ 서울시 “야간 운영 중단 등 검토”/“車와 동일한 수준 책임 물어야”
지난 6일 늦은 밤 귀가를 하려던 대학생 안모(24)씨는 살짝 고민에 빠졌다. 친구들과 술자리를 즐기며 얼큰하게 취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버스, 지하철이 끊겨 버린 것. 택시를 타자니 요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인근의 시청역에 설치된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타면 어렵지 않게 집에 돌아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는 “좀 취하긴 했어도 특별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24)씨도 비슷한 경험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털어놓았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귀가할 때 다섯 번 정도 따릉이를 이용했다고 한다. 김씨는 “그 시간이면 거리에 사람도 거의 없다”며 “술기운에 오히려 더 속도를 내고 즐기게 되더라”고 전했다.

공공자전거를 대중교통이 끊긴 심야에 귀가 수단으로 활용하는 취객들이 늘고 있다. 도심의 차량 정체를 줄일 수 있는 환경친화적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이용자들도 늘고 있지만 일부의 ‘안전불감증’으로 사고 위험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영국, 독일 등의 경우처럼 자전거 음주운전을 처벌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공자전거가 취객들의 귀가 수단으로 이용되는 건 지하철역 입구, 버스정류장 인근, 주택단지 등 시민들의 왕래가 잦은 지역을 중심으로 보관소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당국의 경각심도 커지고 있지만 대책마련을 두고는 엇박자를 이루고 있다.

따릉이 관리주체인 서울시의 관계자는 “(생각지도 못한 취객들의 따릉이 이용에) 사고 예방 차원에서 야간 운영을 전면적으로 중단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며 “지난해 3월 행정안전부에 자전거 음주운전을 규제하는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건의한 뒤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행안부 관계자는 “서울시로부터 요청받은 사안이 없다. 행안부 차원에서 자전거 안전운행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는 있다”고 밝혔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자전거 사고의 위험성은 크지만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자전거는 도로교통법상 차량으로 분류되기만 할 뿐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단지 술을 마신 뒤에는 자전거를 몰면 안 된다고 권고하고 있을 뿐이다.

경찰 관계자는 “19대 국회 때 자전거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규정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통과되기는커녕 안전행정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이런 사정은 자전거 음주운전 처벌 규정이 엄격한 주요 국가들과 비교된다. 영국은 1988년부터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복용하고 자전거를 타다 적발되면 약식기소를 하고 과태료 1000파운드(약 147만원)를 물린다. 독일은 자전거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되면 운전 적성이 없다고 판단해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소한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는 있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전거 음주운전을 자동차 음주운전과 동일한 수준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지난 6월 대표 발의했다. 송 의원은 “단속 근거와 처벌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아 자전거 음주운전 사고 현황이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보행자까지 다칠 수 있는 만큼 자동차 음주운전과 동일하게 책임을 엄격하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통안전공단 정관목 교수는 “술에 취해 자전거를 운행하면 보행자가 다칠 수 있는 것은 물론 도로에서 타고 다니다 차량과 충돌할 수도 있다. 처벌 규정을 마련해 불시 단속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