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 경북 상주인 권 작가는 어린시절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집 인근에 있는 남장사(南長寺)에 지주 놀러 가곤 했다. 어린 눈에는 주변의 석탑과 비석이 신기하게 보였다.
“돌에 새겨진 글자들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있는 모습에 끌리게 됐어요. 어느순간부터 비석과 석탑에 내려앉은 세월의 흔적을 화면에 담아내고 싶어졌어요.”
그의 개인전이 30일까지 서울 당산동 영등포갤러리에서 열린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주최로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비석과 석탑, 불상을 소재로 40여년 간 고집스럽게 작업해 온 단색화 ‘히스토리’연작 30여점을 출품했다.
“한때는 그것도 그림이냐며 비웃음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의 쇠잔함을 담아내야 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세월만큼 헤아릴수 없는 붓질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로서 화폭엔 마모된 비석의 글씨들이 색과 형상으로 들어왔다. 칠하고 또 칠해서 얻어낸 결과물들이다. 일일이 세필로 수 만개의 글씨를 일일이 새겨넣고 지우기를 반복했다.화려한 색채를 무한 반복적으로 올리고, 버무렸다.
“저는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형태조차도. 그저 수없는 행위로 시간을 얻어낸 것뿐이지요.” 결국 생성에서 소멸로 나아가는 과정의 미학을 그리고 잇는 셈이다.
편완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