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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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프리즘] 신기능 물질혁명 ‘메타물질’

빛의 파장보다 작은 구조물 / 나노 공정으로 만들 수 있어 / 투명망토·고효율 태양전지 / 지진으로부터 원전 보호도
인류는 자연의 원리에서 힌트를 얻어 자연에 없던 많은 물건을 만들어 왔다. 벽을 오르는 게코도마뱀의 발바닥 구조에 착안해 접착제를 만들었고, 빗방울이 굴러내리는 연잎 구조를 연구해 물을 밀어내는 박막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메타(meta) 물질에 대한 연구가 뜨겁고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메타 분야 세계 최고 전문가를 포함해 1500여명이 모인 메타물질 국제학회인 제8회 메타물질, 광결정, 플라즈모닉스가 인천 송도에서 열렸다.

‘메타’는 ‘∼을 넘어서’(beyond)란 뜻의 그리스어다. 메타물질은 빛을 포함한 전자파, 음파 등 다양한 종류의 파동이 연구되고 있다. 빛의 파장보다 훨씬 작은 원자가 많이 모여 있는 물질을 빛이 통과할 때는 빛과 원자의 상호작용 효과가 총체적으로 나타나 빛의 특성이 달라진다. 가령, 굴절률이라는 값이 생겨 빛이 꺾이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원자처럼 작지는 않더라도 빛의 파장(가시광선 파장은 400~700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보다 작은 구조물을 나노 공정으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이 이 구조물을 설계해 빛의 특성을 자연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 조정할 수 있다. 메타물질의 특성은 사용된 재료물질뿐만 아니라 구조물의 모양과 기하학적 구조, 크기, 방향 및 배열에 의해 결정된다.

이병호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
이와 같은 메타물질로 음수값의 굴절률, 0의 굴절률, 매우 큰 값의 굴절률 등을 구현할 수 있다. 빛이 느끼는 물질의 특성을 자유자재로 설계해 만들면 투명망토나 투명카펫도 가능해진다. 빛의 경로가 휘어 메타물질 망토나 메타물질 카펫으로 감싼 물체 주변을 돌아서 진행해, 투명해 보이지만 숨겨진 물체는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실제 응용을 위해서는 구조물 제작과정의 어려움, 사용되는 빛의 파장 범위 제한 등 난제가 있지만 특수한 용도로 응용 가능성이 크다.

레이저 유도 미사일에 사용되는 적외선 파장의 빛에 대해 메타물질로 완전흡수체를 만드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이는 투명망토와 달리 메타물질에 입사되는 빛을 거의 흡수해 반사율을 낮춰 레이더에 감지되지 않게 하는 기술이다. 한편으로는 메타물질로 만든 적외선 완전흡수체를 감지기로 이용해 적외선 감지기의 반응도를 대폭 개선한 연구도 국내에서 발표됐다. 메타물질의 응용이 주목받는 또 하나의 분야는 얇은 렌즈다. 수백 나노미터의 두께를 갖는 메타표면으로 만든 평면렌즈로 두꺼운 안경 렌즈를 대체하는 연구도 한창이다. 이는 가상현실, 증강현실용 머리장착 디스플레이를 가볍게 만드는 데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메타표면을 이용해 풀 컬러를 내는 홀로그램도 이미 만들어졌고, 정지된 상이 아니라 동적 영상을 표현하기 위한 가변 메타물질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빛을 전기로 변환하는 광전소자에서 발생하는 전하 이동을 메타물질로 제어해 전력생산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구조도 국내 연구진에 의해 고안돼 태양전지의 효율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휘어지는 플라스틱 기판 위에 메타표면을 만들어 보다 유연하게 다양한 기능을 갖게 하고 특성을 변화시키기 위한 연구도 활발하다.

메타물질의 연구는 빛과 전자파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물질의 밀도, 탄성률 등을 파장보다 작은 구조물로 조정해 음파에 대한 투명망토를 만들 수도 있고, 원리적으로는 지진파, 해일 등에 대한 투명망토를 만들 수도 있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지진파가 원자력발전소 지역을 돌아서 가게 만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메타물질은 전자기학, 음향학 등 이론물리와 재료과학 및 나노 공정 등 공학이 접목된 융합연구 분야이다. 메타물질에 대한 많은 새로운 연구결과가 국내외에서 경쟁적으로 발표되고 있고, 메타물질에 기반을 둔 시장은 2021년에는 19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메타물질이 광학 렌즈, 홀로그래피, 스텔스, 광센서, 태양전지 등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올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수의 대학과 국책연구소에서 이를 위한 협력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 그 성과가 기대된다.

이병호 서울대 교수·전기정보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