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은행권에 20페이지 분량의 비대면 실명인증 가이드라인이 대외비로 배포됐다. 가이드라인에는 향후 출범한 인터넷전문은행까지 고려해 비대면 계좌 개설 시 지켜야 하는 규제 등이 열거됐다. 이후 해당 가이드라인은 몇 차례 유권해석을 거쳐 수정됐지만 금융권에서는 여전히 대면 점포를 보유한 시중은행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인의 비대면 계좌 개설 방법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전문은행에서 법인 수신계좌는 공들이는 시장이다. 대개 전체 수신액 중 35∼40%가 법인 계좌일 뿐 아니라 한번 유치하면 직원 월급통장, 해당 법인과 거래하는 기업 계좌까지도 유치할 수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현 비대면 실명인증 가이드라인상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에서의 법인 수신계좌 개설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소연이 나온다.
이날 세계일보가 가이드라인을 통해 확인한 실명인증 방법은 총 7가지로 △신분증 사본 제출 △영상통화 △통장 혹은 OTP(보안카드) 오프라인 전달 통한 신분확인 △기존 계좌에서 송금 △홍채 등 생체정보 확인 △통신사 등 외부기관 통한 정보 활용 △집주소 확인 등 신용정보사 보유 정보 대조다. 시중은행과 인터넷 전문은행은 앞의 5개 중 2개를 포함해 총 3개를 활용해 의무적으로 실명인증을 해야 한다. 그러나 법인 명의인 탓에 생체인증이 불가능하고 시중은행과 달리 영업인력이 없어 통장 혹은 OTP 전달도 쉽지 않다.
게다가 대면점포를 통한 계좌 개설과 달리 대리인이 허용되지 않아 대표이사가 직접 신분증을 들고 상담원과 화상통화를 해야 한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대표이사가 회사 계좌를 만든다고 직접 신분증을 들고 상담원과 화상통화를 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느냐”며 “직원을 보내 점포에서 계좌를 개설하는 게 더 편리해 인터넷전문은행들도 법인 계좌 활성화에 큰 기대를 안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당국이 비대면 실명인증 가이드라인을 통해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의무적으로 따르라고 하는 건 너무 강한 규제”라며 “은행 스스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문제가 생길 때 사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라인상에서 여권 진위 확인 여부가 불가능한 점도 문제다. 현 제도상 인터넷전문은행은 여권을 신분증으로 쓰는 미성년자와 외국인을 대상으로 계좌를 열어줄 수가 없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거래 시 신원확인 허용사항으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여권을 지정했다. 그러나 주민등록증은 행정자치부, 운전면허증은 국토교통부를 통해 실시간 진위 확인이 가능하지만 여권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시중은행은 점포에서 여권을 통해 계좌개설이 가능하지만 점포가 없는 인터넷전문은행은 여권 자체를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전국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위조된 여권으로 대포통장을 만들 경우 이를 차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나친 개인정보보호, 금융서비스 발전 걸림돌
개인정보보호법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인터넷전문은행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세밀하게 신용분석을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등 해외와 달리 옵트인(당사자가 개인 데이터 수집을 허용하기 전까지 당사자의 데이터 수집을 금지하는 제도) 방식 형태로 개인정보를 보호한다. 더불어 다른 정보와의 결합 가능성까지 고려해 개인정보 식별 가능성을 판단(개인정보보호법 제2조 제1호)하는 등 개인정보를 포괄적으로 정의하고 최소수집의 원칙(제16조 제1항), 수집 목적범위 외의 이용 금지(제18조 제1항)에 따라 인터넷전문은행의 적극적인 빅데이터 활용이 제한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일부 비식별화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이것만으로는 세밀한 신용분석이 힘들다고 지적한다. 중국 알리바바 그룹이 세운 인터넷전문은행 마이뱅크는 그룹이 축적한 개인정보와 당국·경찰청 데이터 등 약 10만건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정확한 신용분석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군희 서강대 교수(경영학부)는 “개인정보는 보호해야 하는 영역이지만 동시에 공공성도 갖는다”며 “금융시장의 정보 비대칭성 해소를 통해 공공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음에도 정부가 개인정보 보호에 치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기준이 포괄적인 탓에 향후 집단소송제(피해자 중 한 사람 또는 일부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하면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 소송 없이 해당 판결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 도입 등을 염두에 둔 인터넷전문은행들이 평판 리스크를 우려해 적극적 활용을 못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도 “만약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하에서 정부가 기존 방침대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면 개인정보 관련 소송이 늘어 인터넷전문은행들이 큰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