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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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써 보답” 버티는 박기영…관망 중인 靑

11년 만에 ‘황우석 사태’ 사과 / 과학계 간담회서 입장표명 / 퇴진 압박 속 연구기관장 등 만나… 예산집중 여론 탓으로 돌리기도 / 과학인단체선 ‘퇴임 촉구’ 서명운동 / “文정부 기대 무너져”… ‘비토’ 목소리 / 靑, 일단 관망… 일각선 “물러나야”
‘황우석 커넥션’으로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박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10일 “일로써 보답하고 싶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청와대는 “박 본부장의 공(功)이 과(過)를 덮는다”며 박 본부장을 옹호했다. 박 본부장이 과학계와 간담회 형식으로 말문을 연 순간 ‘박기영’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박 본부장 거취 문제가 국민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방증이다.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10일 서울 강남구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계 원로 및 기관장과의 정책간담회에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에 기여 없이 공저자로 올린 사실 등 최근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박 본부장, “제의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했다”

지난 7일 임명 직후부터 과학계의 거센 퇴진 압박을 받아 온 박 본부장은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과학기술계 원로, 기관장 등이 참석한 행사에서 입장을 밝혔다. “영광스럽지만 한편으로는 막중한 부담을 느낀다”며 박 본부장은 “혼신의 노력을 다해 일로써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6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 조작 사건 당시 과학정책 책임자이자 연루자로서 사죄 등 어떠한 입장표명도 하지 않아 지탄 받아온 것에 대해 박 본부장은 이날에서야 고개를 숙였다. 박 본부장은 “당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매맞는 것으로 대신하고, 이후 사죄하고 싶었지만 기회를 만들지 못해 너무 답답했다”며 “국민께 실망과 충격을 주고 과학기술인들에게 절망을 안겨준 것에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하며 이 자리를 빌려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2005년 5월 열린 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밝게 웃는 황우석과 박기영.
박 본부장은 이처럼 사죄를 했으나 사태 원인 및 자신의 책임에 대해선 “내게 연구비를 설계하거나 배분하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며 “당시 국민적 여론이 많이 반영된 결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로부터) 제의를 받았을 때 꿈이 있어서 흔쾌히 수락했다”고도 말했다. 논란을 예상하고도 임명을 강행한 청와대나 박 본부장 모두 과학계 반발은 중요하게 염두에 두지 않은 셈이다.

◆과학계, “문재인정부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

소속 회원 대상으로만 박 본부장 퇴임 촉구 서명을 받아 지난 9일 이를 공개한 과학인단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는 잇따른 서명 동참 요청에 이날 추가로 공개서명을 받았다. 그 결과 서명 참여자는 230여명에서 1851명으로 늘어났다. 또 서울대 교수 30여명은 이날 박 본부장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 초안을 만들어 서울대 교수 2000여명에게 서명 참여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교수들은 “황우석 사태를 책임져야 할 인물이 과기혁신본부장에 임명된 것은 과학계에 대한 모독”이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과학계에선 이번 인사에 대한 비판여론에 문재인정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불신이 더해지고 있다. 과학계 관계자는 “문재인정부가 인문사회분야는 잘 알아도 이공계 쪽에는 ‘아킬레스건(약점)’이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과학계가 기업인 출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선임에 한 차례 실망한 후 이번 인사로 “과학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낮구나”라며 돌아섰다는 것이다.

거센 비판 여론에 “여론을 지켜보겠다”며 좌불안석이던 청와대는 이날 오후 문 대통령이 직접 ‘박 본부장의 공이 과보다 크다’는 뜻을 밝히면서 전면적인 지원사격 태세로 돌아섰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이 왜 이번 인사를 했는지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인사권자가 ‘다만 나는 이런 생각으로 인사했다’고 했고 대통령이 이렇게 말했는데 그래도 과학기술계와 국민이 이해 안 된다고 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게 대통령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성준·김수미·이창수 기자 alex@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