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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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라이프] 김생민, 머니 뭐니하다 ‘빵’ 터졌네

‘데뷔 25년 만에 전성기’ 개그맨 김생민
지난 8일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생민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경제권은 아내와 공유한다”며 “아이들 경제교육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킬 생각”이라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제 인생의 스뜌삣(Stupid)이요? 공부를 열심히 안 한 것. 그레잇(Great)은 소비를 안 한 거죠.”

개그맨 김생민(45)이 데뷔 25년 만에 ‘스뜌삣’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팬카페가 생겼고, 그가 출연하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앱스토어 기준 팟캐스트 차트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연예계 ‘통장요정’, ‘재테크 고수’란 별명을 가진 김생민이 청취자가 보낸 한 달간의 영수증(신용카드·체크카드 사용 내역, 입출금 내역 등)을 분석해 지출별로 평가하며 재무상담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불필요한 소비에 ‘스뜌삣!’, 과도하다 싶으면 ‘울트라 슈퍼 스뜌삣!’이라고 수위를 높여 질책할 때마다 폭소가 터진다.

“25년 동안 못 웃겼어요. 홈런을 친 적도 없죠. 갑자기 인기를 끄니 어리둥절하고 또 어떤 일이 생길지 궁금해요.”

‘김생민의 영수증’은 당초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한 코너로 시작했다가 인기를 끌면서 지난 6월19일부터 별도 프로그램으로 독립했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삶을 마음껏 즐기자는 모토)’가 유행처럼 번지는 요즈음 ‘정신무장’, ‘인생개조’를 외치며 극단적인 소비 절제를 주장하는 통장요정이 새로운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연을 보내는 청취자들은 그에게 ‘정신차리게 혼을 내달라’ 하고, 그의 팬카페 회원들은 재테크 고민과 정보를 서로 공유한다. (그의 명언을 아이디로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햄버거 대신 떡을 먹고 커피 대신 면수를 마시는 등의 절약 습관을 가리켜 ‘생민하다’, ‘생민한다’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방송에서는 청취자들 반응에 일희일비하고 웃음 강박증에 걸린 듯 전전긍긍하지만, 지난 8일 실제 만나본 그는 웬만해선 평정심을 잃지 않을 것 같은 내공이 느껴졌다. 스스로 갑자기 떴다고 말하지만, 20년 넘게 영화를 소개하며 갈고 닦은 전달력과 몸에 밴 절약 습관, 동료들과 쌓아온 찰떡 호흡이 없었다면 ‘김생민의 영수증’이 빛을 발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인기를 실감하냐는 질문에 그는 다소 무덤덤했다.

“계단 오르듯 서서히 인기가 오른 것도 아니고 하루 아침에 벌어진 상황이라 정말 잘 모르겠어요. 3년 전 송은이 선배와 김숙이 두 평짜리 방에서 ‘일도 없는데 한 번 해보자’며 팟캐스트를 시작했어요. 출연료 줄 돈이 없으니 친한 연예인들에게 전화연결을 했죠. 자기관리전문가 유재석, 먹거리전문가 이영자, 29금(禁) 전문가 김수용, 39금 전문가 안영미, 그리고 경제전문가 김생민으로 재미삼아 했다가 아예 코너를 맡게 된 거죠. 그런데 저를 비롯해 송은이 김숙 모두 출연료가 없고 작가 역시 무보수예요. 그래서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라고 말하는 거예요.”

(소비절제를 외쳐서일까. 프로그램에 가장 중요한 광고가 잘 안 붙는다고 한다. 광고라곤 그가 직접 부르는 ‘간절한 광고∼ 절실한 협찬∼연락주소서’ 광고안내송뿐이었다가 최근 두어 개 들어왔다.)

그는 영수증을 분석하면서 ‘커피란 무엇인가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껌이란 무엇인가’라며 중독성 소비에 대해 한 번쯤 되돌아보라고 한다. 사소한 소비 하나하나에 대한 그의 진지한 진단을 듣다 보면 절약이 얼마나 몸에 뱄는지 느껴진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스뜌삣한 지출이 무엇일까.

“적자를 만드는 지출, 형편에 맞지 않는 지출이죠. 자신의 꿈에 도달하고 싶다면, 절실함이 몸에 완전히 배거나 교통사고당하듯 엄청난 충격이 있어야 해요. 안 그러면 (소비를)합리화시키게 되죠.”

그는 대학생 때이던 1992년 처음 방송국에서 일하기 시작해 받은 출연료를 무조건 다 저금했다고 한다. 그렇게 10년 동안 1억원을 모으고 2002년 처음 대출을 끼고 집을 샀다. 2007년 한 방송에서 10억원을 모은 그의 사연이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2000년 중반 집값이 오른 덕분에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지만, 부동산 가격 그래프를 그리듯 연도별 추이와 당시 등락의 원인, 금리 수준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통장요정답게 통장은 10개 정도 된다.

“저축은 무조건 자동이체로 합니다. 멘털이 흔들리면 안 되니까. 펀드, 보험 잘 모르고 좋아하지도 않아서 5만원부터 130만원까지 다양하게 저축해요. 1997년부터 부어온 통장이 있는데 65세 때 찾기로 했어요. 가계부는 아내가 쓰고, 저는 가계부를 다 외우다시피 해요.”

일반 회사원과는 수입이나 지출 규모가 다른 연예인이 이렇게 일관되게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쭉 가난했어요. 10남매였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누나들도 사방을 봐도 다 힘들고 절실했어요.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더 절실하고 긍정적이기도 했고요. 그래도 늘 가족들이 긍정적인 게 힘이 된 것 같아요.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도 아직 경제교육을 시키기보다는 아버지가 늘 제게 그러셨듯 ‘사랑한다.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해요.” 

그는 근검절약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한 프로그램당 20년 안팎의 장수 출연으로도 유명하다. KBS2 ‘연예가중계’ 21년, MBC ‘출발 비디오여행’ 20년, SBS ‘동물농장’에 17년째 출연해 ‘방송계 공무원’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표현대로 홈런 한 번 친 적 없음에도 이렇게 롱런하는 것은 방송가에서 보기 드물다.

“제 성실함의 근원은 가정교육이에요. 어려서부터 배가 아파서 미칠 것 같아도 학교 가서 아팠습니다. 일이 그만큼 절실하기도 했고요.”

팟캐스트가 뜨면서 김생민의 영수증을 TV프로그램으로도 제작(19일 오후 10시45분 KBS 2TV 첫 방송)하게 됐고, 출판 제의도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마이크를 거쳐간 수많은 스타들이 하루 아침에 뜨고 지는 모습들 지켜봐서일까. 그는 당장의 인기에 동요하지 않으려 했다.

“전에도 출판 제의를 받았지만 책을 낼 생각은 없어요.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붓두껍에 먹물이 넘쳐 흐를 때 글 써야 한다는 말이 있죠. 넘쳐도 저는 쓰고 싶지도 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건 부끄럽고. 쏠림현상을 이용해서 좀 더 큰 것을 얻으려고 하면 끝이 안 좋으니까요.”

실수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그의 유행어대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인생 최고의 스튜삣과 그레잇이 있을지 궁금했다.

“없는 살림에도 아버지가 저를 위해 교육비를 많이 쓰셨어요. 그런데도 아버지께서 원하는 대학에 못 간 것이 제일 한이 됩니다. 그레잇은 소비를 안 한 거죠.”

개그맨으로 출발했지만 20년 넘게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는 그이기에 프로그램 MC 같은 다른 꿈은 없을까.

“죽을 때까지 일하는 거죠. 롤(역할)은 중요하지 않아요. 룰(규칙)이 중요하죠. 그리고 아버지, 형제, 아내와 자식 가족이 힘들 때 내가 슈퍼맨처럼 해결해주는 것이 진짜 꿈이에요.”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