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컬렉터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전은숙 작가. 그는 “힘겨운 현실이 버겁지만 작가의 길은 이제 숙명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
그는 바슐라르가 한 인간의 믿음, 정열, 이상, 사고의 심층적인 상상 세계를 파악하려면 그것을 지배하는 물질의 한 속성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을 근본적으로 물질적인 것으로 봤다.
“우리의 상상력을 쥐고 있는 것은 사물(이미지)이다. 꿈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꿈을 꾼다. 물은 물의 꿈을, 바람은 바람의 꿈을, 흙은 흙의 꿈을 꾼다. 꿈꿀 수 없다면 우리는 그 무엇에도 닿지 않을 것이다. 상상력이 미래로 이끌게 된다.”
“흔한 카메라의 시선이 아니라 그 안의 의인화된 사물들의 시선으로 담아보려 노력했다. 그것이 꽃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이런 행보는 거침없는 붓놀림으로 감성적인 초상화를 일군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페이턴(1962~)을 떠올리게 해준다. 페이턴은 의도적으로 구성이나 조명 등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포커스가 빗나간 사진들을 현상하여 유화로 옮기는 방식을 취했다.
“우울하거나 다소 퇴폐적인 분위기에 심취해 있는 유명 뮤지션 등의 일상적인 모습을 붓 터치와 색감으로 드러내는 지점은 사진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사진이 담지 못하는 그 무엇을 표현하려 한다.”
‘이미지가 만든 감성이 현실과 꿈을 연결한다’는 생각으로 구상한 작품. |
“만약 캔버스에 음식집을 차린다면 생일 선물로 할머니가 건져 온 해삼과 성게를 썰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문어를 삶아 먹는 기억이 최고의 추억인 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깨달았다. 그림에서 할머니의 맛을 꺼내 보이고 싶다.”
그의 관능적인 색은 해산물이라는 사물에서 온 것이라 하겠다. 195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운동을 주도한 바넷 뉴먼(1905~1970)은 자신의 작품을 미적으로 인식하는 ‘그림’이라기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사물’로 간주했다. 관람객들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신비감과 숭고함을 체험하기를 원했다. 작품을 제작할 때 자신이 체험하고 쏟아낸 광신적, 열광적 감정을 관람객들도 동일하게 느끼기를 기대했다.
“뉴먼은 거대한 단색의 색면을 가로지르는 수직선을 ‘지퍼(Zip)’라고 불렀다. 두 개의 색면에 하나의 수직선을 그려 넣어 크기, 모양, 색채에 관계없이 모든 것은 두 개가 아닌 ‘하나’가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일체의 구성을 포기함으로써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형상이 제거된 화면은 하나의 ‘사물’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바슐라르가 이성 중심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한 이유를 이해하게 해주는 지점이다. 그는 스케치 대신 사진 이미지를 빔으로 쏴 속도감 있는 붓질로 캔버스에 잡아 둔다. 유화지만 그림물감의 용제(溶劑)인 미디엄으로 묽게 해 동양화의 모필과 수채화 붓으로 그린다. 풍성한 이미지 포착을 위해서다.
최근 들어 젊은 컬렉터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의 무게는 버겁다. 현재 그는 철공소가 밀집해 있는 서울 문래동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것도 낮에는 미술교육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휴일이나 밤 시간에 주로 작업을 한다. 인터뷰도 인사동에서 밤에 만나 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 작품을 들고 힘겹게 나타난 모습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청춘들의 애처로움이었다. 그래도 지친 기색 없이 씩씩한 자세는 보는 이에게 위안이 됐다.
“이제 겨우 취향이 생겼지만 그것을 업으로 삼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예술가라기보다 아직도 화가를 꿈꾸는 굼벵이 같은 심정이다. 예민한 감각을 지니며 사는 것조차 때론 사치로 느껴질 때가 많다. 피로감에 지치기도 한다. 예민함을 작업으로 승화시키기도 전에 곧 무디게 하는 방법으로 타협하려는 노력을 더 하는 것 같다. 서퍼(Surfer)가 푸른 물을 가르듯 그것마저도 잘라내야 하는 것이 과제다.”
예술가로 홀로서기의 처절함을 엿보게 해 준다. 그는 그래도 해낼 것이라며 총총히 인사동 밤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