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북핵 레드라인' 공식화… 득일까 실일까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되레 北 도발 빌미 제공” 지적 나와 / “무기화 前 핵실험 용인” 北 오판 여지 / 美, 군사 도발 차단하려 ‘공개’ 안 해 / 송영무 국방 “외교적 수사일 뿐” 답변 / 韓·美 조율 과정 안 거쳤으면 파장 일 듯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레드라인(Redline·정책 변경의 한계선)을 공식화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시점을 레드라인이라고 공개했다. 레드라인은 한·미 간 대북 무력 사용의 기준선으로 인식되는 민감한 용어다.

문 대통령 언급에 따라 우리 정부가 설정하고 있는 레드라인에 대한 일반대중의 궁금증은 해소됐으나 군사전략적 측면에서는 득보다 실이 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미 간에는 그동안 레드라인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야 할 사안이라는 판단이 있었고, 그래서 정부는 레드라인이 뭔지에 대해 말을 아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군 관계자는 “지난달 미국 국방정보국(DIA)에서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가 나오고, 전문가들이 북한이 완전한 핵보유국이 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미국 정부는 끝까지 레드라인을 공식화하지 않았다”며 “군사적으로 레드라인을 공식화했을 때 떠안을 수 있는 부담이 작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레드라인을 공식화하면 북한이 레드라인 직전 단계나 다른 방향에서 일으키는 군사적 도발을 오히려 정당화해주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는 의미다.

우리 군도 미국과 같이 구체적인 레드라인을 공개하지 않았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아예 레드라인이 미국 대통령의 외교적 수사(修辭)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송 장관은 지난달 31일 국회 국방위에서 우리 정부의 레드라인 설정에 대해 “(우리가) 레드라인 기준을 설정한 것은 아니고, 외교적 수사로서 미국 대통령이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발언이 우리 정부 내에서나 한·미 간에 조율을 거치지 않았을 경우 파장이 예상된다. 외교부 조준혁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의 레드라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다. 그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의 엄중성, 그리고 그 시급성에 대한 심각한 인식에 따라서 이와 같은 언급을 한 것으로 본다”며 “한·미 간에는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각 급에서 긴밀하게 소통하고 또 공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레드라인 발언은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우리 군은 북한이 최소 1∼2년 내에 핵탄두를 ICBM에 탑재하는 무기화에 어느 정도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밝힌 기준에 따르면 무기화에 성공하기 전 향후 실시하는 ICBM 시험발사나 핵실험은 모두 레드라인 안에 있게 된다. 국책연구원 관계자는 “북한이 조금 더 도발해도 괜찮겠다고 오판할 여지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솔한 발언”이라며 “미국이 의도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레드라인을 우리 쪽에서 먼저 구체적으로 말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밝혔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김민서·김예진 기자 worldp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