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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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미국, 북한 핵보유국 인정하고 ICBM 폐기 요구 가능성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문제에 ‘先(선) 대화 추진 後(후) 군사 옵션 검토’의 순서로 대응하기로 함에 따라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왔을 때 어떤 합의점이 나올 수 있을지 예상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 이그재미너(Washington Examiner)는 18일(현지시간) 칼럼니스트 톰 로건의 칼럼을 통해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CFR) 회장은 의회 전문지 ‘더 힐’ 기고문을 통해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좋은 옵션은 없다”면서 “이제는 차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국장은 최근 포린 폴리시(FP) 기고문을 통해 “게임은 끝났다. 북한이 이겼다”고 평가했다.

◆멀어지는 한반도 비핵화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대북 대화의 조건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내걸었다. 트럼프 정부는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을 것이고,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응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조야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정권이 체제 유지의 최후 보루인 핵무기를 포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북핵 용인론’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외교·안보팀 책임자들이 선도하고 있다.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DNI)은 지난 13일 CNN 방송과의 회견에서 “북한에 가서 보니 비핵화는 애초 고려할 가치가 없는 생각”이라며 “미국은 북핵을 받아들이고,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냉전 시대 소련 핵무기 수천 기를 용인했던 것처럼 북한 핵무기를 용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이그재미너의 로건 칼럼니스트는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대북 협상의 선행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로건은 “북한의 핵무기가 그 자체로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지상대지상 중장거리 미사일 `화성-12형`
◆ICBM 폐기에 초점


로건 칼럼니스트는 “미국 외교의 절대적인 과제는 북한이 핵탄두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무기 전달 수단인 ICBM만 막으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은 북한에 검증가능한 ICBM 폐기를 요구해 관철하고, 북한이 협상 타결 이후에 이를 어기면 대북 군사 옵션을 동원하겠다는 점을 중국 측에 확실하게 통보해야 할 것이라고 그가 강조했다.

미국의 국방정보국(DIA)은 북한이 핵탄두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이 ICBM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미국의 외교 전문지 디플로매트가 보도했다.

미국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와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ICBM을 확보한 상태에서 ICBM을 폐기하는 데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력가.
사진=AP연합뉴스
◆주한미군 위상 변화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통했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진보 매체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핵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딜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비록 그가 18일 쫓겨났지만, 백악관 일각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에서는 북한과 대화를 하게 되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평화협정에 어느 나라가 서명할지 향후 협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북한의 체제 보장 차원에서 현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란틱은 “트럼프 정부가 평화협정과 함께 북한과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고, 여기에 중국이 공동 서명자로 참여하게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은 평화협정 체결 조건의 하나로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할 게 확실시된다. 로건 칼럼니스트는 “주한미군이 최소한 비무장지대(DMZ) 인근 지역에서는 철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정상회담 추진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김 위원장과 햄버거를 먹으면서 회담하자는 말을 했고, 그를 만나면 ‘영광’이라고 깎듯이 예의를 갖추기도 했었다.

미국의 예비역 대령 게리 앤더슨은 미국의 보수 성향 매체인 워싱턴 타임스(WT)에 17일 기고한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북·미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 미·소 냉전 시대에 옛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중국의 마오쩌둥이 모두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했듯이 김 위원장에게 그러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앤더슨이 주장했다. 앤더슨은 김 위원장이 미국 워싱턴 DC로 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는 판문점이나 중국 베이징이 바람직하다고 앤더슨이 주장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