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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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은 엄마 자격 없나요] “임신 축복은 딴세상 얘기”…모든 과정이 가시밭길

① 헌법 36조서 소외된 장애인 모성권
여성장애인은 성별에 따른 차별 구조가 여전한 우리 사회에서 장애까지 겹쳐 복합적인 ‘다중 차별’을 겪는다. 특히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비장애인은 상상하기 힘든 사회적 편견과 소외, 유·무형의 폭력 등에 시달리기 일쑤다. 여성이라면 본인 의지와 선택으로 누려야 할 모성권도 예외가 아니다. 취재팀이 수집한 대한민국 여성장애인들의 숱한 모성권 침해 피해 사례들을 간추려 가상의 김미영(43·지체장애 1급)씨 사례로 재구성했다.

◆매우 불친절한 사회적 통념과 시선들

어릴 적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된 나는 중학생이 되고 얼마 안 돼 첫 생리를 했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묘했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들은 첫 생리를 하면 대개 부모님이 축하를 해준다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반가운 기색보다 근심이 깃든 난처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던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중·고교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레 이성에 대한 관심이 커질 때는 참 답답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도움이 될 만한 성교육을 전혀 받지 못해 성 지식 자체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주위에 궁금한 것을 물어볼 엄두도 못냈다. ‘그리 성치 않은 몸으로 연애할 꿈을 꾸냐’는 핀잔만 들을까봐서다. 어느 순간엔 나 스스로 ‘정말 결혼은커녕 연애도 사치겠구나’라는 자괴감에 빠졌다. 장애인은 차라리 결혼 안 하고 사는 게 낫다는 식의 주변 공기 역시 숨을 막히게 했다.

그러나 서른 줄에 접어들 즈음 운명적인 사랑이 찾아왔다. 내가 속한 장애인 동호회 활동을 오랫동안 도왔던 남자가 수줍게 다가와 연정을 고백한 것이다. 처음에는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으로 괜히 그런 게 아닐까’라는 의심과 두려움으로 거리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을 확인했고, 이후 휠체어를 탄 여성장애인과 듬직한 비장애인 남성의 데이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싸늘할 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쥐었다. 

◆축복받아야 할 관문 통과할 때도 진통

결혼 문턱을 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우리가 동거하고 있는 사실을 안 시댁 어른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고, 친정 부모는 동거만 하는 게 어떻겠냐며 결혼 자체에 부정적이었다. 그래도 우리의 사랑과 신뢰는 굳건했고 결국 둘만의 가정을 꾸리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임신문제로 친정식구들과 옥신각신했다. 엄마는 대놓고 “사위 도움을 받으며 둘이 알콩달콩 잘 살면 되지 괜히 아이까지 낳아 생고생하지 말라”며 다그치거나 신신당부했다. 중증장애인 딸이 임신과 출산, 양육 과정에서 겪을 고통이 걱정스러운 엄마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나의 입장과 의지를 무시하는 것 같아 무척 서운했다. 그토록 간절히 바란 사랑의 결실이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안 순간 설레고 놀라운 한편으로 두려웠다.

임신하면 쏟아지는 축하 인사로 배가 부르는 게 일반적인데 여성장애인에겐 딴 나라 얘기였다. 시댁마저 탐탁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아마 며느리에 이어 장애가 있는 손주까지 보게 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컸던 모양이다. 나는 엄마가 되기로 결심한 터라 담담하게 ‘희망이’(태명)를 지켰다.
◆임신·출산·양육과정마다 가시밭길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임신부터 출산까지 험난한 고비를 넘겨야 했다. 중증 장애인 산모가 임신기간 건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땅한 정보를 얻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집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산부인과들을 찾아가 보면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거나 다짜고짜 큰 병원으로 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쩔 수 없이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대학병원을 오가느라 적잖은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며 천신만고 끝에 사내 아이를 낳았다. 희망이는 ‘만에 하나’ 했던 어른들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다. 

시댁 어른들도 첫 손자를 안고 무척 좋아했다. 아이를 지우라고 했던 분들이 맞나 싶을 만큼 살갑게 챙겨주셨다. 희망이는 그동안 내가 당한 설움까지 한방에 날려준 복덩이였다.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산후 조리와 양육 과정에서 마주하는 현실적 벽이 엄청 두텁고 높았다. 혹여나 출산 후유증으로 건강이 더 나빠질까봐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산후조리원을 알아보았지만 여성장애인 임산부를 반기거나 장애인용 편의 시설을 갖춘 데가 없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여성장애인 산모를 위해 지원하는 대책은 부실했고 있는 것마저 행정편의주의적이거나 까다로운 지원기준 탓에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주변에 보니 지원제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여성장애인 산모도 적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싼 돈이 들어가는 산후·양육 도우미를 활용할 형편도 안 되는 처지라 하늘이 노랄 때가 많았다. 정말 엄마 등 친정식구들과 남편의 헌신적 도움이 없었다면 정상적인 몸조리와 양육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렇게 첫째와 세 살 터울의 딸아이도 낳아 키웠다.

◆학부모 역할 하고 싶어도 못해 마음 아파

어느덧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이 됐다. 동생과 달리 예민한 성격의 아들 녀석은 지난해부터 학교 행사에 엄마가 오는 것을 꺼렸다. 

친한 엄마한테 들으니 동급생 몇 명이 휠체어를 타고 학교를 방문했던 나를 보고 아들에게 상처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일부 엄마는 자녀들에게 우리 아들과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이에게 괜한 피해를 줄까봐 초중고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가지 못했다”는 한 여성장애인의 말이 떠올랐다. 이후 딸 아이 학급 발표회를 보러 가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있던 아들이 엄마를 모른 체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니 서러움이 북받치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참으로 잔인한 사회란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에게 가하는 냉대와 멸시, 차별도 모자라 그 가족들에게까지 날카로운 가시를 박는다. 우리처럼 사회적·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해 저열한 인권 의식이 시급히 개선되지 않는다면 내 한평생은 한숨과 눈물로 지어질 듯싶다. 더 나이 먹고 늙으면 ‘여성 노인 장애인’으로서 겪는 삼중고와도 맞닥뜨려야 할 테니 말이다.

특별기획취재팀=이강은·최형창·김라윤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