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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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효자동 사람들의 수난

서울 종로구 경복궁 서편의 효자동. 2010년대 들어 청운동, 사직동과 더불어 ‘서촌’으로 뜬 동네다. 효자동이란 이름은 조선 선조 때 문신 조원의 아들 희신·희철 형제가 효자로 소문나 ‘쌍효잣골’, ‘효곡(孝谷)’으로 불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궁 밖에 살던 ‘출입번’ 환관(내시)들의 집단거주지라서 ‘고자동’으로 불리다가 어감이 좋은 효자동으로 바뀌었다는 이설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촌과 북촌 등에 일본인들이 몰려들면서 이 동네에 살던 주민들도 청계천으로 밀려난 아픈 역사가 있다.

청와대를 이웃으로 둔 탓에 1970∼80년대 효자동 사람들이 겪은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복궁 담벼락과 나란한 효자로는 보안상 대형 트럭의 진입이 아예 금지됐다. 쓰레기 차량도 들어갈 수 없어 주민들이 쓰레기를 내다버리려면 구청에 신고해 날을 잡아야 했다. 집을 뜯어고치려면 허가를 받을 때까지 보통 2, 3년을 기다렸다. 보일러를 교체할 때에도 신고해야 하고 담당자가 입회했다. 집에 밥솥이라도 사들고 가려면 경복궁역부터 수차례 검문검색을 받았다. 야간통금이 없던 시절에도 밤에 귀가하는 고교생에게 무장군인이 총구를 겨눴다. 그나마 대문 열어놓고 다녀도 도둑 걱정 없었던 게 효자동 사람들의 유일한 혜택이었다고 한다.

우연하게 청와대 전속 이발사가 된 주인공이 겪은 격동의 현대사를 그린 영화 ‘효자동 이발사’. 영화 속 내레이터 낙안이는 자신이 태어난 4·19혁명 당일에 대해 “청와대로 올라가는 우리집 앞에는 사람들이 가득 몰려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5·16쿠데타 이후 이곳에서 집회나 시위는 언감생심이었다. 금단의 지역이 50여년 만에 열린 건 촛불집회가 계기가 됐다. 경찰의 집회금지 통고를 법원이 뒤집은 끝에 지난해 11월26일 5차 집회부터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촛불 행진이 가능해졌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효자동에서 집회가 하루라도 그칠 날이 없다. 지난 3개월간 300여건이었다고 한다. 확성기 소음에 노상방뇨, 쓰레기 투기로 주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참다못한 주민들이 지난주 “우리 동네를 돌려 달라”며 피켓시위를 벌였다. 효자동의 수난은 언제쯤 끝날 것인가.

박희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