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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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미의영화산책] 노년기 행복의 열쇠

시간이라는 독재자는 어느 누구든 노년으로 이끈다. 의학의 발달로 갈수록 긴 노년을 보내야 하는 고령시대에 어떻게 하면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까가 많은 사람의 관심사다. 그 조건 중 하나가 부부가 함께 무병해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치매라도 걸린다면 행복도 먼발치로 밀려난다.

영화 ‘해피엔딩 프로젝트’(감독 마이클 맥고완)는 아내가 초기 치매에 걸렸음에도 60년을 함께 산 부부의 다정하고 애틋한 사랑을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준다.

젊은 사람 못지않은 잉꼬부부에게도 살아가는 문제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풍광 좋은 시골에서 소 키우며 딸기농장을 하던 그들에게 과학영농 법규는 그들의 생업을 유지할 수 없게 만든다. 소들은 낡은 울타리를 자주 넘어가 차도로 뛰어들며, 냉동시설을 갖추기엔 턱없이 규모가 작은 영농가는 납품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 차제에 그들은 소도 처분하고 산타클로스처럼 갓 딴 딸기 모두를 이웃집 대문 앞에 놓아두고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부부의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2층집은 한겨울 추위를 견뎌내지 못한 채 여기저기 얼어붙으며 떠날 것을 강요한다. 89세의 남편 크레이그(제임스 크롬웰)는 건강하며 의지도 굳건하지만, 아내 아이린(주느비에브 뷔졸드)은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고, 급기야 계단에서 넘어지기까지 한다. 아이린은 자신을 요양원에 보내려면 총을 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어, 땅 외에는 돈이 없는 크레이그는 온전히 혼자서 아내를 위한 단층집을 지을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러나 급변하는 시대에 뒤처져 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법규들이 무겁게 내리누른다. 치매 걸린 아내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집을 지을 줄 아는 남편이 직접 짓겠다는데, 26개항의 허가 규정을 어겼다며 집을 철거하거나 감옥에 가야 된다는 것이다.

문제에 봉착할 때마다 깊은 신뢰로 이겨내는 영화 속 노부부의 모습은 노년기 행복의 열쇠가 바로 저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작지만 큰 힘으로 보여준다. ‘마음의 평화가 바로 행복’이라는 철학자 스피노자의 말이 문득 스친다. 묵은지처럼 오래된 남편과 아내지만 먼저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던져보는 것이 평화로운 가정, 행복한 사회의 밑거름이 아닐까.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