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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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고이케와 일본 정치

가곡 ‘봉선화’. 노랫말이 슬프다.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억눌린 민족의 슬픔과 고뇌를 그린 김형준의 시 봉선화다. 관동(關東·간토)대지진을 겪은 홍난파는 돌아와 이 시에 자신이 만든 ‘애수’ 가락을 붙여 가곡을 만들었다.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 이름이 똑같다. 관동대지진 때 학살의 진상을 밝히려 애쓰는 곳이다.

왜 봉선화일까. 분홍·빨강·자주색 꽃. 피는 모습은 수줍고, 시드는 모습은 애처롭다.

1923년 9월 1일, 진도 9.0의 강진이 도쿄·요코하마·지바를 강타했다. 사망·행방불명자 14만명. 학살이 이어졌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참변을 당한 조선인은 6661명에 달했다. 독립신문이 전한 내용이 그렇다. 일본정부의 통계는 없다. 있다 해도 공개할 리 만무하다. 이역에서 눈을 감은 조선인들. 지는 봉선화와도 같은 애처로운 운명이다.

해를 94번 돌아 그날은 어김없이 또 찾아왔다. 이맘때면 관동대지진의 기억은 신문을 장식한다. 올해 내용은 좀 다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의 말 때문이다.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 “비문에 적힌 6000명이라는 숫자의 근거는 희박하다. 역사를 일그러뜨리는 행위에 가담해선 안 된다.”

숫자를 못 믿어 추도문을 보내지 않겠다는 것인가. 이전 도지사는 왜 매년 추도문을 보냈을까. ‘관동대지진-조선인 학살의 기록’. 1100명의 증언을 모은 책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됐다. 이 책 몇 장만 넘겨봤다면 그런 소리가 나올까.

여성 정치인 고이케.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7월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그의 ‘도민퍼스트회’는 의석을 석권했다. 총리 물망에도 오르내린다. ‘역사 청맹과니’ 지도자가 일본열도에 또 나타날 판이다. 고이케에게 던지는 물음 하나. “일그러진 것은 역사인가, 역사 인식인가.”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 아니라고 강변하면? 믿음을 잃는다. 고이케는 어떤 미래를 꿈꿀까. 극우 포퓰리즘 교언(巧言)이 판치는 나라에 밝은 미래는 움틀 수 있을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