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배연국칼럼] 여기 독립군이 있소

노비의 아들로 태어난 최재형 / 조국 광복에 목숨과 재산 바쳐 / ‘무일푼’ 부부 뮤지컬로 제작 / 국민 각자 기억하고 되새겨야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영웅으로 죽었다. 천민 신분이었으나 망해가는 조국을 그냥 볼 수 없었다. 평생 일군 재산과 하나뿐인 목숨까지 독립의 제단에 바쳤다. 러시아 항일 운동의 대부 최재형! 잠자던 기억을 흔들어 깨운 이는 팝페라 가수 부부인 주세페 김(한국명 김동규)·구미꼬 김이었다.

얼마 전 저녁 모임에서 만난 남편 주세페 김은 좌중을 향해 “독립운동가 최재형을 아느냐”고 물었다. 음악인의 입에서 나오기 힘든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그 선입관은 불과 몇 초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사학자 뺨칠 정도의 역사적 소양을 가진 사람이었다. 최재형 선생을 재조명하는 뮤지컬을 제작 중인 그는 11월에 시범작을 선보인 뒤 내년 광복절에 완성작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가 독립운동가의 삶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3년엔 조마리아 여사가 옥중의 아들 안중근 의사에게 보낸 편지를 소재로 ‘아들아 아들아’를 작곡해 발표했다. 선생의 존재도 그때 처음 알았다고 한다.

배연국 논설실장
함경북도 경원에서 태어난 선생은 영락없는 천출이었다. 아버지는 노비였고 어머니는 기생 출신이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흙수저에도 끼지 못하는 ‘무수저’였다. 아홉 살 되던 해에 부모를 따라 연해주로 이주했다. 몰래 상선에 오른 그는 선장의 배려로 세계의 견문을 익히고 근대 교육을 받았다. 군납으로 큰돈을 벌고 군수 격인 도헌의 자리에도 올랐다.

선생은 최상위 1%의 삶이 보장됐지만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다. 한인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봉급을 쪼개 장학금을 주었다. 사람들은 한인들을 보호해주는 난로라는 뜻에서 그를 ‘최 페치카’라고 불렀다. 조국의 운명이 기울어진 뒤에는 항일투사의 길을 걸었다. 의병활동을 지휘하고 신문을 만들어 일제를 규탄했다. 임시정부 수립에도 재산을 쏟아부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에도 선생의 역할이 컸다. 안 의사가 거사 전에 머문 곳은 선생의 집이었다. 하얼빈역에서 총성을 울린 8연발 권총 역시 선생이 사준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우리 집 벽에 사람 셋을 그려놓고 사격연습을 하고 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안중근이었어요.” 그의 딸 올가의 증언이다. 선생은 안 의사가 붙잡히자 러시아인 변호사를 지원하고 가족까지 보살폈다

연해주 선생의 집에는 ‘죽음의 문’이 아직 남아 있다. 선생이 최후를 맞으러 나섰던 문이다. 1920년 4월 일본군이 집으로 몰려왔다. 막내딸이 뒷문으로 피신하라고 했지만 선생은 “내가 가면 너희들이 고초를 겪을 것이거늘 어찌 혼자 살길을 찾겠느냐”며 뿌리쳤다. “가세요.” “못 간다.” 딸은 눈물로 등을 떼밀고 아비는 뿌리치고…. 그 서럽던 모습이 눈에 아린다. 선생은 일본군이 있는 앞문으로 나가 생을 마쳤다.

가장 비천한 몸으로 가장 고귀한 일을 했으나 선생의 삶은 조명받지 못했다. 그의 항일 투쟁이 러시아와 연계됐다는 점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잘못은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이다.

나는 오늘 두 분의 위대한 독립군을 본다. 한 분은 암흑의 시기에 광복의 난로를 피운 최 페치카이다. 또 한 분은 그 난로의 온기를 세상에 전하면서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는 주세페 김이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저항시인 이육사의 예언대로 그는 독립의 노래를 목 놓아 부르는 초인 같은 존재다. 쉰이 넘었지만 이들 부부에겐 변변한 전셋집조차 없다. 살림이 가난해 교회에서 불우이웃 물품을 보낼 정도다. 사무실이 없어 뮤지컬 제작진도 카페를 전전하며 부부를 돕는다. 백 년 전 독립투사들이 해외를 떠돈 것처럼.

뜨거운 8월이 지나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최재형 같은 독립 영웅을 기억하는 일이다. 선생을 알기 전과 안 후의 앞으로 광복절은 분명 달라야 한다. 마침 광복절은 그분의 탄신일이다. 8월15일에 태어나 영원한 ‘광복의 빛’을 후대에 물려주었다. 우리들 각자에겐 그 빛을 갚을 빚이 있다.

배연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