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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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범죄예방디자인 '셉테드'… 절도는 줄었지만 성범죄는'글쎄'

보행환경 개선 상계동 절도 44%↓/사업 완료 서울 7개 지역 모두 ‘효과’/성범죄 지역별로 증가·감소 엇갈려/청소년 비행 범죄는 모두 증가 눈길
6일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의 한 빌라촌에 적용된 ‘범죄예방디자인(셉테드)’의 일종. 사람에게 친숙한 강아지 캐릭터를 이용해 낡고 어수선한 동네 분위기를 밝게 바꿨다.
학교를 파한 아이들이 TV를 보러 서둘러 집에 가고, 놀이터에 모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왁자지껄한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빌라촌. 여느 곳과 다를 바 없는 동네지만 어둠이 깔리면 퇴근길 직장인들이 괜히 몸을 움추리게 되는 ‘우범지대’였다. 소규모 공장과 복잡한 구조의 다세대 주택이 좁은 골목길에 몰려 있어 야간 공동화 현상이 뚜렷했다. 서울시는 이 지역 안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범죄예방디자인(셉테드·CPTED)’을 적용했다. 어두운 골목길에 가로등을 설치하거나, 외진 곳의 담벼락을 없애는 등 범죄 발생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공공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이다.

슬럼화한 도심의 범죄율을 낮추는 획기적인 방법으로 주목받았던 셉테드는 실제 효과를 거뒀을까. 지역별 편차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절도 발생을 줄이는 데에는 도움이 됐지만 성범죄나 청소년 비행 등 무질서 관련 범죄에는 뚜렷한 효과가 없다는 게 최근 발표된 연구의 결과다. 

6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2016 범죄 예방디자인 사전 사후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15년까지 셉테드 사업이 완료된 서울의 7개 지역 절도 발생건수가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원구 상계동, 양천구 신월3동, 강북구 삼양동 등 3개 지역에서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상계동의 경우 재개발 사업 무산으로 노후 건물이 방치돼 있고, 인적이 드물어 통행 불안감이 높은 곳이었다. 그러나 사각지대에 안전거울을 설치하고, ‘계단 비추미’ 등 보행 환경을 개선하자 이 지역 절도 범죄 발생 건수는 2015년 77건으로 전년도 대비 44.2%가 감소했다. 2016년에는 60건으로 더 줄었다. 어린이 안전공원을 조성하고 폐쇄회로(CC)TV와 곳곳에 설치한 비상벨 수를 늘린 신월3동은 2015년 절도 발생 건수가 전년도 대비 6.9% 감소한 233건으로 집계됐다. 2016년에는 이보다 30% 줄어드는 등 감소세가 뚜렷했다. 삼양동 역시 2015년 빈집에 가림막을 달고, 방치된 공간을 텃밭으로 꾸미는 사업을 진행한 결과 전년도에 비해 절도가 47.5% 줄었다. 

성폭력 범죄는 지역별로 증가와 감소가 엇갈렸다.

삼양동은 사업 시행 전에 비해 성폭력 발생율이 52% 감소했다. 가산동과 상계동도 각각 36.4%, 63.2%가 줄었다. 그러나 골목길 자투리 공간에 운동기구를 설치하고, 도로 바닥 도색을 새로하는 등 환경 정비에 힘썼던 동작구 노량진동에서는 오히려 65.4%가 늘어 효과를 보지 못했다. 신월3동은 사업 시행 전 9건에 불과했던 성폭력 범죄가 24건으로 증가했다.

청소년 비행, 주취자의 행패나 소란 등을 포함한 무질서 범죄의 경우에는 대체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셉테드가 도입된 이후 7개 지역의 관할 경찰서에 접수된 청소년 비행 범죄는 모두 증가했다. 가산동의 경우 2014년 26건에 불과했던 관련 신고 건수는 사업 시행 후인 2015년 45건으로 증가했다. 상계동 역시 셉테드 적용 후인 2015년 114건으로 집계돼 2014년에 비해 43%가 늘었다. 주취자 관련 신고 건수는 가산동의 경우 2014년에는 125건으로 사업시행 전인 2013년에 비해 19.2%가 줄었지만, 2015년 191건으로 다시 크게 늘어 일관된 효과를 입증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강용길 치안연구소 연구관은 “절도 범죄 감소에는 효과가 입증됐지만, 성폭력이나 무질서 관련 범죄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큰 효과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도 “셉테드 사업이 일부 지역에서만 진행되고 있어 정확한 범죄 통계를 도출하기 힘든 점이 있는 만큼 세부적인 범죄 예방 효과를 밝히기 위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민순 기자 soon@segye.com